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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공동브랜드] 가파치
입력2000-04-11 00:00:00
수정
2000.04.11 00:00:00
홍병문 기자
가파치는 최초의 중소기업 공동 브랜드 제품이다.광고는 물론 유통과 제품 개발도 함께 해 원가를 줄이고 품질은 높이자는 것이 공동 브랜드의 출발점이었다.
3년간의 준비결과 가파치가 탄생했다. 93년 국내에 최초의 공동 브랜드 제품이 나온 것이다. 외국 유명 브랜드에 대항해 중소기업이 한데 뭉쳐 공동으로 한가지 상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성공이었다. 처음에는 냉대하던 백화점들도 하나 둘 가파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품질은 외국 제품보다 우수하고 가격은 더 싸다」 가파치에 붙는 소비자들의 품평이었다.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이란 뜻의 우리 고유어 「갖바치」에 이태리어 요소를 도입한 가파치 상표는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다름아닌 해외 유명 제품과 떨어지지 않는 품질 덕분이었다.
현재 7개의 회사가 가파치라는 상표를 사용하고 ㈜가파치(대표 성상현·成商鉉)가 지갑, 벨트 핸드백을, 범양글러브(대표 윤병덕)에서는 장갑을, 현진유니섹(대표 김교혁)에서는 양말을 만들고 골드메쉬(대표 심용주)와 정원(대표 강종기)이 각각 라이터와 시계를 만든다. 이밖에 타올과 양말, 넥타이, 제화 등의 제품이 가파치라는 상표로 시중에 나와
가파치의 成사장은 『각각의 제품에서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공동 브랜드의 성공 요소』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공동 브랜드 제품에 애로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회사라도 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내 놓는다면 브랜드 전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며 『매주 관련 회사 대표들이 모여 품질에 관한 회의를 한다』고 설명한다.
공동브랜드를 악용하는 업체가 생기기 않도록 각 업체에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책임감도 강조한다.
『장갑과 양말을 생산하는 범양과 현진유니섹의 경우 연 매출이 150억원을 넘을 정도로 알찬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成사장은 말한다.
가파치라는 브랜드에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97년 외환 위기 사태로 成사장이 경영하는 가파치라는 기업이 갑작스런 부도를 맞은 것이다.
成사장은 이런 실패를 『가파치라는 제품의 품질 관리에서 잠깐 눈을 뗀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지금은 품질 관리에 더욱 애착을 갖고
『두가지 정도는 외국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선보이고 나머지 5가지는 국내 소재를 고집하겠다』고 成사장은 설명한다. 『무분별하게 해외 제품만을 들여온다면 내 것이라는 고유 브랜드의 가치는 사라진다』는 것이 이유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디자인과 컨셉 설정은 이미 끝났다. 제2의 도약을 위해 품질 관리에 더욱 힘을 쏟겠다』며 成사장은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成사장은 『제품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기 때문에 나이에 맞게 변화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도후 신제품 출시에 더딘 발걸음이었지만 이젠 회사가 안정된 만큼 올 봄 남성용 지갑 벨트 등을 시작으로 신소재·신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파치는 올해 매출 180억원을 예상한다. 내년에는 2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인터뷰-成商鉉 가파치사장
가파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인물은 성상현(成商鉉) ㈜가파치사장이다. 피혁제품에 미쳐 한가지 외길을 파 온 인물로 가파치라는 공동 브랜드의 산 증인이다.
그의 피혁제품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70년대 말 남대문 시장에서 벨트등 피혁 제품을 가공해 만들어 팔았다. 피혁 제품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니나리찌와 찰스주르당이라는 브랜드 이름이 국내에 생소한 80년대, 이 브랜드의 라이센스를 국내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세계적 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국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유럽과 일본으로 뛰어다니며 기술을 배워 최고 품질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의 벽은 두터웠다. 국내 소비자는 이미 외국 유명 상표에 길들여져 있었다.
브랜드의 힘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국내 최초로 공동 브랜드라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93년에 탄생한 국내 최초의 공동 브랜드 가파치는 곧바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중소기업 제품에 고개를 돌리던 백화점들도 뛰어난 품질 덕에 하나 둘 가파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탄대로를 달리던 가파치는 지난 97년 외환 위기 사태로 갑작스런 부도를 맞았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것이 화근이었다』고 成사장은 설명한다. 중국과 국내에 무리하게 8개의 공장을 확충했던 것이다.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자금상환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800만 달러에 달하던 국내외 공장 설비가 200만 달러도 안되는 가격에 처리되는 것을 보고 成사장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450명이 넘던 국내외 직원들을 구조조정하고 현재는 180여명의 직원이 남았다. 그는 『실패의 경험이 경영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회사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 지를 파악하고 품질관리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가파치는 현재 구조조정한 직원들의 퇴직금도 모두다 처리가 되고 이젠 부도 후유증에서 벗어난 상태다. 부채를 조금씩 상환하면 2,3년 안에 정상 궤도를 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홍병문기자GOODLIF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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