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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된 시간제 일자리] "쥐꼬리 월급에 눈칫밥" 취업 꺼려… "시킬 일 없다" 기업도 기피

'정규직 대우' 슬로건 무색… 단순 업무에 계약직 대접

1~2개월만에 퇴사하기도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 선진국 사례 벤치마킹

일자리 질부터 높여야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3년 전 아이를 낳고 퇴직한 A씨는 지난해 말 S그룹에서 진행한 시간제 일자리 채용에 응모했다. 직무는 통합 멤버십 서비스의 고객 상담 분야였다. 하루 4~5시간 정도 근무하면 가정살림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일을 통한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A씨는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음에도 첫 출근 직전 입사를 포기했다. A씨는 "생각보다 낮은 급여와 '시간제=비정규직'이라는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민 끝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핵심 병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시간제 일자리가 '애물단지'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루 4~5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사회로 복귀시켜 고용률 제고와 장시간 근로 관행 해소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에 일자리 창출을 독려했다.

◇적합한 직무개발 한계로 기업들 채용 꺼려=하지만 막상 기업들의 시간제 일자리 채용 계획(약 1만5,000명)은 정부 한 해 목표치(22만여개)를 한참 밑돌고 있다. 정부 예상대로 올해 말까지 2만명 수준에서 시간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목표치의 9% 수준에 불과하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구직자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삼성·현대차 등을 비롯한 전체 시간제 일자리의 50% 이상이 계약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직무도 단순 사무보조 등에 국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 양질의 일자리'를 표방한 정부의 슬로건이 무색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일부 기업에서는 A씨처럼 조기 퇴사자가 속출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시간제에 적합한 직무가 한정돼 있다 보니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며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54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3.8%의 기업이 시간제 도입을 꺼리는 이유로 '적합 직무 부족'을 꼽았다. '업무 연속성 단절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지목한 기업도 28.5%나 됐으며 '높은 이직·퇴사 가능성'을 언급한 회사는 9.0%였다.

◇목표 집착 말고 '근로의 질' 담보해야=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일찍 시간제를 도입해 시행 중인 해외의 경우는 어떠할까. 해외 선진국들은 한국과 달리 철저히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 일자리의 질을 높인 것은 물론 다양한 직무에 시간제 근로자를 활용해 제도 안착에 성공했다.

지난 1980년대 초부터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한 네덜란드는 일반 기업은 물론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시간제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임금 수준과 승진 등에 있어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영국 정부는 아예 시간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의 차별대우를 금지하는 시간제 근로자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이 같은 해외 사례를 본보기 삼아 우리나라도 일자리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일자리의 질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직무개발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신규 채용을 무작정 늘리다 보니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되는 것"이라며 "일자리 숫자나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정규직 위주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시간제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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