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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ㆍ아프가니스탄 정상들이 탈레반을 ‘냉혹한 살인자’로 규정하는 등 강경 입장을 재확인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겉으론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이후 탈레반의 반응에 대해서는 긴장하는 모습이다. 직접 협상을 위한 접촉을 강화하고 있지만 탈레반이 만의 하나 인질 추가 살해 등 극단적 돌발 행위를 취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7일 국무회의에 앞서 기자와 만나 미ㆍ아프간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예상했던 수준”이라고 답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결과를 보면 예상했던 수준의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상회담의 결과와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협력을 추진할 것이며 대응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천 대변인은 하지만 두 정상이 별도의 만남에서 나누었던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전해들은 것은 있지만 언급하기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우리 정부가 이처럼 정상회담 이후에도 ‘직접 협상 계속 추진-국제 여론 호소’ 등 투 트랙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지만 답답함이 더해진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ㆍ아프간 정상회담에 따라 인질과 수감자간의 맞교환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히려 탈레반이 돌발 행동을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천 대변인은 “정상 회담 결과가 피랍자 문제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무장단체의 행위를 염두에 두고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 정부로선 직접 협상이 유일한 돌파구라는 일종의 ‘외통수’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어 보인다. 또 그만큼 탈레반을 설득할 보다 높은 수준의 협상력이 필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일단 인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피랍자들의 건강상태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고 보고 탈레반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협상 장소 등을 조기에 타결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대면 접촉을 통해 최대한 빨리 의약품 등이 인질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 등 공신력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대면 협상의 장소와 시기 등을 조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탈레반을 달래기 위해 직접 협상에 앞서 한국이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인질석방에 대한 대가로 탈레반 측에 내놓을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실효적 방법’, 즉 제3의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실효적인 방법으로 검토 중인 방안에는 탈레반이 기반을 삼고 있는 파슈툰족 지역사회에 학교나 병원을 직접 건립하거나 그 비용을 우리 측이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의 우호적인 여론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우선 9일부터 사흘간 카불에서 열리는 이슬람 부족 원로 회의인 ‘지르가’에서 인질 석방에 대한 긍정적인 결의가 나올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런 노력에도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송 장관은 “과거에도 (인질 사태 해결에) 평균 35일이 걸렸다”고 말해 문제 해결을 위해 너무 조급하게 접근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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