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고 싹이 돋아난다는 우수(雨水)를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이 코앞이다. 하지만 여의도 증권가에는 아직도 겨울 바람이 매섭다. 이직과 연봉계약으로 시끌벅적 하던 여의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증권사들의 수익이 쪼그라들어 여의도에 구조조정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증권맨들이 납작 엎드린 까닭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수익 감소에 시달리면서 인력 구조조정과 고용 형태 등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증권의 꽃’이라 불리는 애널리스트 뿐 아니라 법인영업, 리테일, 채권 트레이딩 등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증권맨들은 자신의 몸값을 불려 ‘이직=연봉인상’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최근에는 ‘옛일’이 되고 있다.
한 증권사 법인영업부 대리는 “직급 인플레이션이 극심하다는 증권사이지만 입사 후 7년이 되도록 아직 대리에 머물러 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수익성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회사 내에서 승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나마 회사에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내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한 번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몸 값이 크게 뛰는 대형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도 최근에는 같은 수준만 제시해도 중소형증권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잦다”며 “아무래도 대형사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고 또 최근 리서치센터의 감원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사와 중소형 증권사간의 고용 형태도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주식 매매 수수료가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중소형사들은 정규직 인력을 계약직으로 변경하면서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반면 고액 연봉을 받는 계약직 직원들이 많은 대형사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값싼 정규직 비중을 늘리고 있다.
한 소형증권사 관계자는 “얼마 전 회사와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변경하는 계약을 했다”며 “연봉도 그대로인 상황에 고용 불안감만도 크지만 회사 수익이 올라오면 좋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변환하고 있다. 평균 연봉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리서치센터의 애널리스트들도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다. 회사마다 계약 시기나 방법 등에 차이가 있지만 보통 애널리스트들은 회사와 정규직으로 계약을 할지, 매년 연봉 협상을 하는 계약직 시스템으로 할지 정할 수 있다.
한 대형 증권사 스몰캡 담당 애널리스트는 “보통 리서치 어시스턴트(RA)에서 애널리스트로 올라갈 때 정규직과 계약직 중 선택하는 증권사들이 많은데 최근에는 연봉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채택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며 “애널리스트들의 고용 안정성 요구와 회사의 비용 절감 필요성이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증시가 어렵고 리서치센터 감원 바람이 불고 있어 최근 일부 증권사의 경우 리서치센터 전체적으로 자진해서 연봉을 삭감한 것으로 안다”며 “심지어 일부 애널리스트의 경우 계약직에서 연봉을 대폭 삭감해 정규직 임금 체제로 전환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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