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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의 수렁을 벗어나기 위해 빚을 선택했지만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짐은 결국 후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28조9,000억원의 슈퍼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308조3,000억원에서 366조9,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도 32.5%에서 38.5%로 뛰어오른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불어난 적자재정이 나라 경제의 압박요인으로 두고두고 작용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위기의 골이 깊어질 경우 하반기에 이번 추경보다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은 더더욱 부담이다. 신연석 중앙대 경영대학 교수는 "오늘내일 끝날 위기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잠시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추경과 같은 주사 한 방을 놓을 게 아니라 재정건전성의 의미를 따져보면서 집행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추경재원 76%가 적자국채=일자리 추경의 재원은 세계잉여금 2조1,000억원, 기금 여유자금 3조3,000억원, 기금차입금 1조5,000억원, 국고채 22조원으로 구성됐다. 전체 28조9,000억원 가운데 국채가 76%를 차지하는 것. 기금 여유자금은 고용보험기금에서 2조1,000억원, 공공자금관리기금 1조원,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700억원 등을 끌어오고 기금차입금은 중소기업창업진흥기금의 채권발행으로 조달한다. 국고채 22조원 중에서 5조1,000억원은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한도를 이용한다. 올해 원화표시 외평채 한도 14조원의 3분의1을 추경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적자국채 발행물량은 일반회계에서 잡은 19조7,000억원에서 17조2,000억원이 추가되면서 올해 모두 36조9,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전체 국고채 발행한도도 74조3,000억원에서 91조원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국채 100조원이라는 부담을 벗어나기 위해 기금, 외평채 한도 등에서 재원을 조달하기는 했지만 91조원은 사상 최대 규모다. ◇국가채무 안정권 벗어나=정부가 당초 제시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0%대 초반. 하지만 이번 추경에 따라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며 국가채무는 366조9,000억원으로 늘어나 GDP 대비 부채 비율도 38.5%까지 올라가게 된다. 지난 2003년 165조7,000억원에서 6년 만에 나라 빚이 2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정부가 중요하게 보는 관리대상수지는 사상 최악으로 떨어졌다. 관리대상수지는 국세 등 정부 수입에서 각 부처 사업 등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다시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재정건전성의 주요 지표다. 추경으로 빚이 늘어나면서 관리대상수지는 올해는 51조6,000억원(GDP 대비 -5.4%) 적자로 지난해 16조6,000억원(-1.7%) 적자에서 적자폭이 3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GDP 대비 관리대상수지 비중은 사상 최악의 수준이었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5.1%보다 더 나빠지게 된다. ◇지방에 빚 떠넘기기 논란=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도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법인세와 소득세ㆍ부가세 등 국세가 11조4,000억원 줄어들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교부세가 각각 2조3,000억원, 2조2,000억원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방세의 근간인 취득ㆍ등록세마저 경기악화로 줄어든데다 지방으로 가던 종합부동산세마저 줄면서 지방재정의 고통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방 재정건전성 악화에 따라 정부는 5조3,000억원의 지방채를 인수하지만 정작 지방정부에서는 중앙정부의 빚 떠넘기기로 해석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의 세입감소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가 급격하게 좋아지지 않는 한 계속되는 만큼 감세에 따른 고통도 지방이 지고 이에 따른 빚도 떠안아야 하는 꼴이라고 지방정부들은 주장한다. 정부는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교부율을 내국세 총액의 20.5%로 지금보다 0.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또한 지방소비세 신설 여부 등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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