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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후/서건일 중기연 초빙연구위원(여의도 칼럼)
입력1997-03-01 00:00:00
수정
1997.03.01 00:00:00
서건일 기자
한보사건으로 중소기업들이 또 한 번 치명타를 맞고 있다.경기침체로 인한 중소기업 부도사태가 잇따르기 시작한 지도 벌써 2년. 새해들어 몰아닥친 노동법 파업 파고에 이어 중첩된 한보 불똥은 이제 중소기업 전반에 걸쳐 도산 도미노현상을 빚고 있다.
지난 1월 한달 동안에만 1천1백15개 기업이 쓰러졌다. 서울의 어음부도율은 금액기준 0.16%로 15년만의 최고기록이다. 월중 부도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니, 부도를 얻어맞고 도산위기에 몰린 기업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야말로 경제 재앙이다.
부도업체의 숫자나 금액이 줄어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생장력이 넘치던 제조업체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중소기업의 자생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탓해서도 안된다. 경쟁력이 없으면 망할 수 밖에 없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그토록 균형성장과 구조개선을 소리높이 외쳤건만 중소기업의 취약한 성장기반을 그대로 방치한 과오, 중소기업의 잠재력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런데도 한보사태로 인한 피해구제나 중소기업 자금지원은 말 뿐 실효가 없다.
은행창구에서는 담보요구, 신용보증기금에서는 보증인 타령이다. 정부가 아무리 자금을 방출한다해도 돈은 금융권에 고여있다. 중소기업의 자금시장은 예와 다름없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지금 중소기업인들은 그 살얼음판을 딛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안절부절한다.
그들중 일부는 대기업처럼 덩치가 크지 않아서, 관계·금융권로비·정경유착을 잘 할줄 몰라서 파산 당한다고 생각한다. 더러는 문어발식 확대경영이나 상호출자·지급보증과 같은 행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권력의 비호와 은행의 특혜금융을 못받아서 쓰러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대부분의 중소기업인들은 정치권과 관료, 재벌대기업이라는 3각 연계철선이 엮어낸 한보와 같은 부실기업지원, 그로 인한 자원편중과 중소기업 자금고갈, 그 무책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소기업이 맥없이 쓰러지고 있다고 믿는다.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이 되는 혼돈의 위기상황이다. 제발 한보사태의 수습이 이러한 중소기업의 피해의식을 말끔히 씻어내 더 많은 중소기업이 새롭고 활기롭게 일어서는 일대 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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