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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미국 연수 중 겪은 경험이다. 한번은 연수지인 중부 미주리주 컬럼비아에 인접한 세인트루이스 램버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부 로스앤젤레스(LA)로 가 며칠 묵다 돌아올 예정이었다. 세인트루이스의 램버트공항에 오후2시쯤 도착해 수속을 밟고 있는데 갑자기 'LA로 향하는 노선 전체가 취소됐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LA에서 저녁 일정을 어떻게 보낼까 행복한 상상을 하던 상황에서 느닷없이 전면 취소 방송을 듣고는 많이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항공사 카운터로 가 이유를 물었더니 'LA에서 출발해 이곳으로 올 예정이던 비행기의 기장석 앞 유리에 약간의 금이 가는 바람에 노선 전체가 하루 종일 취소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하룻밤 묵을 숙소와 공항 매점에서 저녁을 사 먹을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해준 게 조치의 전부였다.
'유리창에 금 하나 갔다고 비행기 전부를 안 띄우다니 말이 되나' 하며 내심 신경질이 확 밀려왔다. 별일도 아닌 일에 미국인들이 유별나게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도 했다. 이러니 서비스 경쟁력도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나름대로의 분석도 해봤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장 비행기 띄우라며 승객들은 득달같이 따졌을 게 뻔하다(필자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태도는 우리와는 정반대였다. 당시 주변 승객들의 태도도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행 취소로 모든 예약일정을 변경해야 되는 상황인데도 왜 항공편 전체를 취소시키느냐며 얼굴 붉히거나 고성을 내지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어떤 미국인 할머니는 "늘 있는 일"이라며 오히려 미소까지 지으며 두 어깨를 살짝 들어 보였다.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무언의 제스처였던 셈이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불편을 묵묵히 감내하는 것을 보고는 부럽기까지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리창에 약간의 금이라도 가면 비행 도중에 큰 사고가 날 수 있고 나머지 비행기에서도 비슷한 결함이 있는지 모두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전 노선 항공편이 취소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전 노선 취소가 지극히 정상인 조치였던 셈이다.
사석에서 이 같은 경험을 전해 들은 미주리대의 한 교수는 "전 노선 취소에도 미국인들이 항의는커녕 차분히 불편을 감내하는 것은 안전은 그 어떤 가치와도 맞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미국인들의 사고가 당국이 안전을 위해 모든 조치를 제때 취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우리처럼 비행기가 제때 안 뜬다고 항의부터 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도 안전문제 만큼은 그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다는 것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불편도 감내할 수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시도해볼 때다. 안타까운 세월호 사고를 취재하면서 매뉴얼을 떠나 우리가 근본적으로 놓치고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다 미국서 겪은 경험을 곱씹으며 내린 결론이다. /김홍길 사회부 차장 wha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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