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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20도에서 얼음이 언다

[KAIST의 과학향기] 이론상으론 초고압서만 가능…국내 '100만V 실험'으로 입증


20도에서도 어는 ‘뜨거운 얼음’을 아십니까? 서울대 화학과 강헌 교수 연구팀이 ‘뜨거운 얼음’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화제가 됐다. 물에 금(金)으로 만든 전극을 넣고 강한 전류를 흐르게 했더니, 섭씨 20도에서 미세한 얼음막이 형성되는 것이 확인 된 것. 이른바 ‘뜨거운 얼음’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 와 ‘사이언스’ 등 여러 과학 학술지에서 잇따라 주요 뉴스로 소개되기도 했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서 상온인 20도에서 얼음이 얼었냐는 것. 물(H2O)은 산소 원자와 그보다 작은 2개의 수소 원자와 결합된 물질이다. 물 분자 하나는 V자 모양으로 수소 2개가 양끝에 위치하고, V자의 꼭지점에 산소가 위치해 있는 형태다. 그런데 물 분자에서는 산소가 수소의 전자를 끌어 당기는 힘이 강해, 이웃의 다른 물 분자에서도 각각의 수소와 산소가 서로 끌어당기게 된다. 바로 이러한 분자간의 결합이 수소결합이다. 수소결합이 물 분자들을 서로 끌어당겨 모여 있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물은 쉽게 증발해버리지 않고 액체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주변의 온도를 낮춰 물 1g에서 약 80칼로리의 숨은 열을 뽑아내면 수소결합은 분자들을 더 단단하게 잡아 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얼음이다. 그렇다면 ‘뜨거운 얼음’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이론적으로 초고압 상태에서는 가능하다. 통상적으로 얼음의 녹는점은 섭씨 영도(0)도가 되지만, 2만5,000바(bar)의 압력에서 얼음의 녹는점은 섭씨 100도나 된다. 때문에 높은 압력을 가하면 이론상으로는 고온의 얼음을 만들 수는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얼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압력을 가해 주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실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뜨거운 얼음은 아직까지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온도를 낮추거나 압력을 높이는 대신 물에 아주 강력한 전기를 거는 방식을 주목했다. 물에 고압의 전기를 걸면 물 분자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하면서 얼음이 되기 때문. 문제는 ‘뜨거운 얼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1m당 10억 볼트의 전기가 공급되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됐고, 그 누구도 이 이론을 입증해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다. 강 교수팀 역시 고압의 전기를 이용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그러나 강 교수팀은 10억 볼트가 아닌 100만 볼트의 전기만으로 상온 20도의 상태에서 얼음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론상 전기보다 무려 1,000배나 적은 양이 소요 된 것. 물론 상온의 상태에서 얼음이 어떻게 얼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해 강 교수팀은 좀 더 규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뜨거운 얼음’이 언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더구나 100만 볼트의 전압이라면 엄청난 전기장 같지만 휴대폰 배터리 전극이나 우리 몸에서 신경신호가 전달될 때도 순간적으로 이 정도 전기장이 걸리기 때문이다. (글: 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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