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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정취에 빠져보자
입력2002-10-31 00:00:00
수정
2002.10.31 00:00:00
파주 공순영릉
서울 구파발에 사는 김한국(40ㆍ가명) 씨. 한 주 내내 일과 술에 지쳐 집에서 쉬고 싶은 일요일이지만, 아내와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길을 나섰다.
무작정 차를 몰다 보니 어느새 문산방면 1번 국도.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면서 찌뿌둥했던 몸도 가라앉았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구파발삼거리를 지나 20분쯤 달렸을까.
'공릉국민관광단지'라는 이정표에 끌려 샛길로 들어서니 공순영릉이다.
조선시대 왕비 세 분을 모신 공릉ㆍ순릉ㆍ영릉이 모인 공순영릉. 차에서 내리자, 도시와는 차원이 다른 맑은 공기가 김씨 가족을 반긴다. 능 안은 삼림욕장이 따로 없다.
전나무ㆍ잣나무ㆍ참나무ㆍ밤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졸졸졸 흐르는 맑은 실개천이 한 없이 정겹다.
이날 김한국씨 가족은 붉은 단풍과 새파란 하늘에 취하고, 사박사박 낙엽을 밟는 소리를 즐기며 만추의 서정을 만끽했다.
오늘은 11월 1일, 아직 가을이다. 계절이 저물어감이 아쉬우면서도 먼 길 떠나기 부담스럽다면, 서울에서 가까운 파주의 공순영릉을 권한다. 지금 공순영릉은 늦가을 정취가 충만하다. 산책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릉관광저수지와 하니랜드가 지척이고, 주변에 맛집들이 즐비해 가족나들이로 제격이다.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봉일천리에 위치한 공순영릉(사적 제205호)은 조선조 예종의 비 장순왕후의 공릉과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순릉, 영조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0살의 어린 나이로 요절한 진종과 그의 비 효순왕후를 모신 영릉이 한 데 모여 있다. 이 중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모두 한명회의 딸로 친자매이다.
공순영릉의 왕비들은 한결같이 비운의 여인들. 장순왕후(1445~1461년)는 세조 6년(1460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돼 인성대군을 낳았지만,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고, 뒤늦게 성종 3년에 왕후로 추존됐다.
성종의 비인 공혜왕후(1456~1474년)는 생전에 왕비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역시 성종 5년(1474년) 18세로 소생도 없이 승하했다. 진종(1719~1728년)의 비 효순왕후(1715~1751년)는 37세까지 살았으나 14세때 남편을 잃고 무려 23년이나 독수공방하다가 자식도 없이 외롭게 세상을 떴다.
이처럼 애달픈 내력 때문인지 능원의 분위기는 숙연하다. 훤칠한 숲 사이로 조촐하게 자리한 봉분과 재실 등은 정숙한 여인의 풍모를 느끼게 하고, 청명한 가을하늘에 우뚝한 홍살문이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영릉과 순릉, 공릉 순으로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아 한 시간 남짓. 특히 영릉에서 순릉으로 오르는 길엔 맑은 실개천이 흐르고, 타는 듯 붉은 단풍잎은 늘푸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만추의 아름다움을 절감케 한다. 능원 관계자도 "공순영릉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요즘 같은 늦가을이죠"라고 귀띔했다.
짧은 능원 산책이 아쉽다면, 공순영릉 한가운데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공릉관광저수지와 하니랜드를 찾아도 좋겠다. 운치 있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2~3분 달려 숲을 빠져 나오면 저수지와 놀이시설을 갖춘 8만여평 규모의 공릉국민관광단지가 나온다.
저수지 주변에는 오솔길이 호젓하고, 걷다가 걸터앉아 쉴 수 있도록 곳곳에 벤치가 놓여있다. 단지 내 놀이시설인 하니랜드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 어린이용 놀이기구외에 가족퍼팅놀이, 보트장, 수영장, 낚시터 등이 갖춰져 있다.
파주= 글ㆍ사진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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