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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정치논리에 제2 대동은행 나올라

'지방은행 매각' 지역 상공인 과도한 특혜 요구<br>경남 등 궐기대회 거센 반발… 지역색에 경제논리 힘 잃어

국민은행이 직원들이 대구 수성동 대동은행 본점에 영업정지 안내공고문을 붙이고 있다. /서울경제DB


무리한 대출로 10년새 BIS비율 -8% '처참한 말로'
"과거 실패 반복할 수 없어" 당국 곤혹 속 지역여론 주시
● 과열 치닫는 지방은행 매각… 제2 대동은행 나올라


지방은행 매각공고를 이틀 앞둔 지난 13일 경남 창원시 만남의 광장. 경남ㆍ울산 상공인과 근로자, 은행 직원 등 1만3,0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경남은행을 지역에 돌려달라"고 외쳤다. 이 자리에서 홍준표 경남지사는 "다른 지역은행이 경남은행을 인수하려고 하면 도금고를 빼버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경남 민심은 더 확산되고 있다. 경남ㆍ울산 지역 상공인이 중심이 된 경남은행 인수추진위원회는 진주와 양산ㆍ울산을 돌며 궐기대회를 계속한다. 100만인 서명운동도 받는다.

이에 질세라 광주 지역 경제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광주은행의 지역 환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까지 주장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15일 경남ㆍ광주은행 발행 주식 총수의 56.97%를 전량 판다고 공고했다. 오는 9월23일까지 예비입찰 서류를 접수한 뒤 실사 등을 통해 11월 새 주인을 선정한다. 매각가는 1조2,000억원 안팎 수준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매각 제1원칙은 '최고가'. 하지만 당국의 이런 의지는 매각 작업이 과열로 치달으면서 빠르게 퇴색되고 있다. 정치권을 등에 업은 지역 상공인들이 과도한 특혜를 요구하는데다 지방자치단체까지 무력시위에 동참하면서 매각 작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경제적 게임이 아닌 지역색과 정치논리로 변질돼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시작도 못해보고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경제적 논리를 고수하겠다고 하지만 거세지는 지역색에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심지어 이들 은행이 어렵사리 매각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외환 위기 당시의 끔찍한 과거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되고 있다. 지역 상공인과 주민이 중심이 돼 만들어졌다가 외환위기 때 문을 닫은 대동은행 얘기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지역 상공인이 은행을 가져가면 경영을 잘 하겠느냐"며 "IMF 직후 퇴출된 대동은행(대구 소재)을 보지 않았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동은행을 알려면 외환위기 때의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은행과 대기업들은 덮쳐오는 파도를 넘지 못했다. 1998년 들어서는 은행 퇴출작업이 시작됐다. 많은 국민들은 이름도 처음 들었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8%'가 살생부의 기준이 됐을 때다.

6월29일 5개 퇴출 은행이 발표됐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대동ㆍ동남ㆍ동화ㆍ경기ㆍ충청 등 5개는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이 중 대동은행은 1998년 3월 말 현재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88%로 5개 은행 중 최악이었다. 부채의 자산 초과규모도 2,942억원으로 가장 컸다. 저축은행이 아니라 은행의 건전성 지표다. 제일 부실했다는 얘기다.



대동은행이 이렇게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동은행은 1989년 노태우 정부의 '지방소재 중소기업 전담은행 설립방안'에 따라 세워졌다.

지역상공인과 주민이 700억원을 내고 은행 등 금융사가 300억원을 댔다. 비슷한 시기에 부산을 본사로 하는 동남은행도 세워졌다. 주주 구성은 대동과 흡사했다. 두 은행의 지분구조는 현재 경남과 광주은행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지역 상공회의소가 생각하는 그림과 비슷하다. 숫자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 상공회의소가 주가 되고 일부 대기업과 금융사를 참여시키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대동은행은 중소기업 전문은행을 표방했다.

하지만 여신관리 부실과 외환위기를 전후로 경기침체가 겹치다 보니 빠르게 썩어 들어갔다. 무리한 영업도 많았다. 당시 부실기업이었던 기아자동차에 530억원, 한라 320억원, 청구에 700억원이 물려 있었다. 금융계의 고위관계자는 "당시에는 은행들이 전반적으로 대출외압을 많이 받을 때였다"면서도 "상공인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실이 커질 수밖에 없던 구조"라고 했다. 동남은행도 부실 문제로 대동과 함께 퇴출됐다.

이 같은 경험 탓에 당국은 상공인이 은행을 가져가는 것을 걱정한다. 금융권에서도 기업체들이 대주주로 있다 보면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은 무조건 영업을 많이 해 매출을 늘리는 게 좋지만 은행은 그렇지 않다"며 "리스크 관리보다는 대출과 자산 경쟁에 힘쓸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지금은 여신심사위원회가 따로 있고 사외이사들의 견제로 상공인들이 주주로 있더라도 대출을 마구잡이로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보듯 프라임그룹 같은 기업체가 소유한 은행에는 문제가 많았다.

이런데도 광주상의는 광주은행 인수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정부를 압박하고 있고 경남은행 인수추진위는 김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과 서동욱 울산시의회 의장 등이 함께 참여하는 5인 공동위원장 체제로 조직을 확대했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지역에서 과도한 요구를 계속 하는 탓에 우리금융 민영화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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