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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부조직 기능개편만은 제대로
입력1999-03-31 00:00:00
수정
1999.03.31 00:00:00
KDI 高英先 연구위원기획예산위원회는 지난 11월부터 올 2월까지 46억원의 예산을 들여 중앙부처 및 일부 자치단체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하였다. 감사원·검찰 등 일부 기관이 제외되기는 하였지만 사상 처음으로 민간인들을 활용하여 정부조직을 평가하였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부처 통폐합안이 행정부내에서 논의를 거치며 상당 부분 수정 변질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부처 통폐합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연히 막대한 예산만 낭비했다는 주장이 수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금융분야(재경부·기획위·금감위 등)의 경영진단에 직접 참여하였던 필자가 보기에 이는 지나치게 성급한 주장이라고 판단된다. 경영진단의초점이 부처 통폐합에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부처 내부기능의 점검에 있었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축소 폐지되어야 할 기능과 확대 보강되어야 할 기능을 파악하는 일이 경영진단팀의 주임무였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은 IMF위기 이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백일하에 드러나 그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뒤늦게나마 외환거래 자유화, 금융감독체계의 정비, 기업관련 법제의 개편 등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위기가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국가경영체제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경쟁정책기능, 빈곤대책 등 정책입안의 필수요소인 조사통계기능, 예산의 사전적 심사분석기능과 사후적 평가기능,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치안기능 등은 아직 선진국 수준과 거리가 멀다. 반면 물가관리·산업지원 등 민간 경제에 대한 직접적 통제와 개입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평가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책능력 부족과 핵심기능 미흡에 있다.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여 정책을 개발·실행·수정하기 위한 전문성·유연성·책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개발연대의 기능이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도 결국은 이러한 문제점에 기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경영진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대규모 작업이었다. 부처 통폐합은그 결과의 일부에 불과하였으며 더 중요한 것은 각 부처의 내부적 기능개편에 있었다. 또한 각 기능별 성과목표와 성과지표를 설정하여 실적위주의 운영체제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사실 부처 통폐합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정형화된 부처체계는 찾기 어렵다.
경영진단이 단순한 예산낭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경영진단팀에서 제시한 각 부처의 기능개편안이 관철되어야 한다. 기능개편만이라도 제대로 된다면 경영진단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반대로 기능개편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경영진단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단순한 예산낭비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경영진단 결과를 충실히 반영하여 기능개편에 착수해야 한다. 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각 부처와 정부기관의 기능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한편, 이번에 개발한 성과지표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금번 경영진단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보다 엄밀한 기능분석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11월부터 2월까지의 4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고 생각된다.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나 국민이 보기에는 46억원이 매우 큰 액수일지 모르나 민간 컨설팅회사나 회계법인의 입장에서는 기회비용에 크게 못 미치는 적은 금액이었다. 그 결과는 부실한 경영진단이 될 수도 있고, 이들이 어디에선가 다른 형태의 대가를 뽑아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만일 예산확보가 어렵다면 지금처럼 모든 부처에 대해 한꺼번에 경영진단을 실시하지 말고 차례대로 일부 부처에 대해서만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민간 컨설팅 회사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고 공공부문의 문제점에 대해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을 활용해야 한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컨설턴터들은 공공부문의 기능이나 작동원리에 대해 극히 피상적인 지식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거의 백지상태에서 경영진단을 시작하다보니 차츰 담당부처의 논리에 빠져들어가 이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중립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을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넷째, 조직축소나 인력감축에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규모는 사회복지분야를 제외하더라도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인력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경영진단을 꿰맞추려 할 경우, 확대 보강되어야 할 부문에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기 어렵다. 효율화만이 유일한 목표는 될 수 없으며 다소 인력의 중복이 발생하더라도 정책능력을 배양하고 핵심기능을 강화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보완된다면 이번 경영진단은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생산성 향상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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