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거목 정주영 타계] '살던 집'과 '영면의 집'
입력2001-03-25 00:00:00
수정
2001.03.25 00:00:00
정주영 명예회장의 삶과 죽음, 각기 다른 공간을 꿰뚫는 주제가 있다. '검소함'. 그가 반평생을 보낸 청운동 자택은 보통 사람들의 집과 다름없었다.그가 영면의 장소로 택한 창우리 묘소 역시 재벌가에서 흔히 발견되는 '호화'라는 단어와 큰 차이가 있다. 살아서, 그리고 타계후 그가 보여준 모습은 "가난이 싫어 버렸지만 평생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자주 말한 '농사꾼'그 자체였다.
◇살던 집
정 회장이 마지막까지 까지 기거했던 청운동의 2층. 그의 타계후 단 2명의 기자에게만 허용한 기회로 둘러본 그의 방은 바닥에 깔린 흰 광목천과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가구들만이 덩그렇게 남겨져 있었다.
역시 흰색 천이 깔린 침대와 그 옆에 놓인 환자용 침대, 작은 등나무 의자는 고인이 남향으로 넓게 트인 창을 통해 햇빛 가득한 산을 바라보며 그리워했을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침대와 의자 위에 얌전하게 있는 분홍빛과 푸른빛 담요는 시골집 아랫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침대 옆에 놓여진 북한 마을의 풍경 사진을 보며 그는 고향집 아랫목 담요 밑에서 데워진 시루떡을 먹던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지난 삶에 더욱 애착을 갖는다고 했던가. 창 바로 앞에 놓여진 낡았지만 견고해 보이는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그의 삶과 가족들과 관련된 책들이 양쪽으로 쌓여있었다.
특히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일찍 생을 마감한 동생 정신영을 다룬 '기자 정신영', 고인의 사업 역정이 고스란히 담긴 '아산 정주영과 나'는 가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침대 옆에는 여닫이 문이 없는 단순한 수납장과 옅은 갈색 빛의 장롱이 있다.
화려한 장식하나 없이 고인의 유품만이 가지런히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현대 마크가 새겨진 모자와 중절모, 내의는 평범한 노인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줬다.
책상과 장롱 등 가구는 가뜩이나 색이 옅은데다 모서리까지 닳아있어 평소 그의 검소한 성품을 드러냈다. 방 한켠에는 거울이 비스듬히 세워져 검소한 그의 성품이 드러난 방을 비추고 있었다.
청운동 2층에 있는 정 전 명예회장의 방. 재벌 회장의 흔적을 찾기 힘든 평범한 방이다.
◇영면의 집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영원한 안식처로 택한 곳은 그가 생전에 보인 모습만큼이나 검소했다.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검단산에 자리한 하동 정씨 가족묘. 이미 그의 부모와 장남 몽필씨가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세인들의 관심을 모은 고인의 묘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할 것 없는 모습으로 부모의 아래자락에 자리했다. 전체 크기는 9평 남짓.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생전의 영광을 놓지 않으려는 듯 웅대한 석상이나 화려한 비석으로 치장하곤 한다. 하지만 그 위업의 흔적은 죽음의 천리를 피할 수 없다는 진리만 부각할 뿐.
그런 점에서 화장을 선택한 고 최종현 SK회장에 이어 조촐하면서도 평범한 정 회장의 묘지는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인의 묘는 비석도 없이 낡은 가구밖에 없던 생전의 방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묘역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가 비석을 대신할 뿐. 새로 단장한 잔디는 고인의 방에 깔려 있던 흰 광목천을 연상시켰다.
당초 정 회장의 묘는 부모 묘의 제단이 놓일 자리에 마련됐다고 현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따라서 화려한 비석이나 장식물도 꾸밀 틈이 없었다.
촛대석 두개만이 묘역 양쪽을 지키고 섰다. 그의 안식처는 그의 업적을 드러내는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우리 경제사에 남긴 자취는 묘역의 그것과 너무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최원정기자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