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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본 금강산] 실향민관광객 표정
입력1998-11-22 00:00:00
수정
1998.11.22 00:00:00
【금강산=장덕수 기자】 분단 53년만에 처음 북한 땅을 다시 밟은 실향민 관광객들은 이번 첫 금강산관광의 사흘동안 기쁨과 슬픔, 설레임과 통한의 눈물이 뒤섞인 감정의 교차로에서 허우적대야 했다.19일 아침 금강호가 장전항에 들어서자 갑판에서 70대의 한 할머니는 『오마니』를 외쳐부르며 흐느꼈다. 장전항 어디선가 헤어질 때 바로 그 모습으로 어머니가 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며 울부짖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20여년간 남한도 북한도 아닌 열사(熱沙)의 땅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아온 염만임(廉萬琳·64)씨는 죽기 전에 고향을 밟아 봐야겠다며 이번 관광길에 나섰다.
『장전항은 내가 월남할 때 하룻밤 묵은 곳이야. 그래서 왔어. 고향 땅을 꼭 한번은 다시 밟아 봐야겠어』
廉씨 고향은 장전항에서 80리 떨어진 원산. 그러나 38년만에 맑은 장전항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벌써 100리길 저너머 원산 시내가 펼쳐진다.
협심증으로 지난 9월 잠시 귀국해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廉씨는 이번 관광이 끝나면 제2의 고향 사우디로 되돌아간단다.
평북 의주가 고향인 신이준(申利俊·73)씨는 『평북이라 강원도와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52년만에 고향을 밟아보니 감개무량하다』고 장전항 쪽으로 쏠린 눈을 돌리지 못한다.
금강산을 3번이나 올랐던 김희제(金熙濟·75)씨는 50여년전의 장전항과 금강산의 모습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여기 정전항이 왜정시대에는 나무들이 울창했는데 지금은 금강산 주위에만 나무가 있고 장전항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네. 장전항도 많이 바뀌었어. 정어리공장도 큰 것이 있었고, 2·3층짜리로 집들도 많았는데』라며 몰라볼만큼 적막해진 장전항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金씨는 『금강산은 그대로야. 훼손이 하나도 안됐어. 그게 제일 반갑네』라고 반색했다. 그는 온정리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오르던 일, 만물상에 다다랐을 때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내던 기억들을 술술 풀어놓았다.
강성길(姜誠吉·58세)씨는 사흘간의 금강산 관광기간 내내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길 없는 사연에 애간장을 녹여야 했다. 姜씨 고향은 바로 금강산 관광의 출발지인 온정리 뒷편인 운곡리. 온정리 마을끝 산자락을 돌아 넘기만 해도 수십년을 하루같이 그려온 고향이 있다.
누가 10분만 말미를 줘도 고향땅을 밟을 수 있는데…. 그의 마음은 차라리 수백리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저리고 아팠다. 마을 한 귀퉁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 달려왔지만 이번 관광코스가 모두 고향 반대쪽이라 운곡리로 들어서는 길목만 먼발치서 바라보며 발을 떼지 못했다.
姜씨도 금강산을 자기 손바닥보듯 꿰고 있다. 금강산 소풍을 2박3일로 갔다 온 적도 있다는 그는 수십년 세월에 조금도 변함없는 금강산을 다시 보게된 것만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광 마지막날 온정리를 벗어나며 『우리 마을이 그대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정리부터는 주민이 산다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지만 그의 가슴에는 또다른 희망이 자라나는듯 했다.
임상례(林相禮·80)씨 고향은 황해도 금천군 은덕면 백양리.
林씨는 6·25때 30여명의 가족과 친척을 잃고 월남했다. 그러나 4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무런 슬픔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는 그저 서로가 나라 살려보자고 한 일이니까…』라며 마치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되새길 뿐이다. 그의 고향에는 아마도 가까운 친척은 거의 없을 것이라 말하면서도 『혹시라도 누가 남아있어 만나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안성또순이」로 유명한 안점례(安占禮·69)씨는 절경의 구룡폭포를 내려오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한 실향민이 북한 안내원을 붙잡고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본 安씨는 『우리 집안도 아들이 없어 내가 어머니 묘를 찾아 옮겨와야 하는데』라며 흐느꼈다.
박순영(朴淳龍·78)씨는 47년만에 어머니의 생사를 확인했으나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함에 몸을 떨었다.
관광 첫날인 19일 북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을 붙잡고 사정한 끝에 이튿날 오전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朴씨는 『가시다니, 내가 왔는데』라며 참았던 오열을 터뜨렸다.
마지막 날인 21일 朴씨는 구룡폭포 코스로 들어가는 목란관 앞에서 간단한 차림이나마 돌아가신 어머니께 제사를 지냈다. 그는 어머니가 묻힌 땅을 다시 떠나야 하는, 유골이라도 모시지 못하는 불효를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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