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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허상
입력2002-05-30 00:00:00
수정
2002.05.30 00:00:00
어느 길모퉁이에 "오, 노∼! 미국에게 지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쓴 반미벽보가 붙어있다. 용산청년회가 '16강 기원을 위한 한미전 응원마당'을 조직하는 벽보이다.
미국팀과 경기하는 6월 10일 오후에 뜻 있는 지역 구민들은 회관에 모여 텔레비전으로 함께 경기를 보면서 열띤 응원 판을 벌이자는 것이다.
축구는 본능과 투쟁의 스포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열정과 절제된 폭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축구가 인간의 본능과 열정과 투쟁을 압축한 운동이라면 축구로 사람들이 이처럼 야단법석인 까닭을 설명할 수 있겠다.
지난 일요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한국 프랑스 평가전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이 느낌을 말했다. 그는 동네축구를 보는 것 같더라고 했다.
선수들은 헉헉대며 달리고 소리지른다. 선수끼리 몸싸움을 하고 붙들고 늘어지기도 한다. 이른바 압박축구(토털사커)를 하면서 팀의 그물 망이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하는 전경도 보인다.
관중의 함성에 묻혀 실감이 더하다. 그러니까 시야가 탁 트인 잔디구장에서 인간이 숨차게 달리고 몸으로 부딪히는 현실을 직접 체험한데서 나온 소감이다.
우리는 월드컵 경기장에 나가지 않아도 텔레비전으로 경기 현장을 더 세세하게 관람할 수 있다고 기뻐한다. 텔레비전은 이미 강력한 사회문화제도로 자리를 잡아서 어떤 때는 문화전체가 텔레비전 화면이 방출하는 이미지와 소리에 매몰된 것처럼 보인다.
텔레비전은 현실감을 전달하는 능력 때문에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매체처럼 보일 뿐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재구성하는 소리와 이미지를 아주 자연스러운 듯 이해하므로 텔레비전이 어떻게 의미와 쾌락을 만들어 내는지 의문을 던지지 못한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시청자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텔레비전이 전하는 사실성(리얼리즘)은 동기를 가지고 편집한 인위적 구성의 소산이다. 우리는 텔레비전이 기술적으로 부호화한 허상을 보고 쾌락을 느낀다.
예를 들자면, 축구중계를 할 때의 텔레비전 시선이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운동장 한 방향에서만 찍어야지 약속을 어기고 다른 방향에서 찍는다면 시청자는 누가 어느 편에서 공격하는지 몰라 혼란에 빠진다.
텔레비전의 월드컵 중계는 오직 공을 따라다니는 게 고작이다. 사람들의 숨소리와 체취와 함성이 탈색된 허상이다.
/안병찬(경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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