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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이 흔들린다] 3. 직원들 벤처 '엑소더스'
입력2000-02-01 00:00:00
수정
2000.02.01 00:00:00
그는 『며칠전 구조위에서 발표한 그룹의 인터넷 사업진출 계획을 이해하고 있으며 다른 그룹이 재빨리 움직이고 있는 만큼 우리도 해야 한다』고 이해하면서도 『구조위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A사장은 『우리 그룹에서 돈이 어디서 나오는가. 제조업 계열사들이 돈을 벌어야 인터넷과 생명공학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 풍조는 제조업에 있으면 사람이 바보가 되는 꼴이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사장인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를 할 수 있겠는가』라며 『우리가 그룹의 「캐시 카우」인데 돈을 쓰기만 하는 신사업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다. 제발 신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가 장시간에 걸쳐 조목조목 떨어놓은 불만의 요지였다. 한마디로 정보통신 등 신사업의 중요성도 인정하지만 국가 기반 산업인 제조업을 경시하는 풍조는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최근 직장마다 누가 인터넷 관련업체로 억대의 연봉과 스톡옵션을 받고 이직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회사에서는 사원들 단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나 묘안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이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제조업을 이끄는 경영자라면 A사장의 불만에 고개를 끄덕인다. 산업의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 중심의 벤처 창업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제조업체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같은 초기 몸살이 악화되면 인터넷 만능 풍조→핵심 인력 유출→사원 사기 저하→제조업 경시 풍조→제조업 주가 저평가→자금 시장 왜곡→제조업 경쟁력 저하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 인력의 유출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쉽게 옮길 수 있는 전자업체의 경우 「2월 이직 대란설」이라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LG전자·SK 등 업체들은 파격적인 보상과 인센티브를 내거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태원(崔泰源)SK(주)회장은 『요즘 대기업에는 3류인재만 들어오고 있다』며 『대기업이 변화의 노력없이 이대로 가면 무너질게 명백하다』고 말했다.
崔회장은 『앞으로 SK에서는 같은 직급이라도 연봉이 10배나 차이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연말에 300~400%에 가까운 성과급을 지급, 벤처를 향한 직원들의 발길을 묶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올해내에 연구인력 등 핵심부문에 대해서는 벤처기업 못지 않은 스톡옵션 기회를 부여하고 다른 사원들에게는 목표 이익 최과달성시 이익의 20%를 골고루 나누어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LG전자도 2월초까지 돈 다발을 듬뿍안겨 인재 이탈을 방지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정기보너스에 성과급 지급, 설날 정기 상여급 등 2월초까지 설달동안 600% 안팎을 집중 투여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벤처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포상, 인센티브 제도를 대폭 강화하면서 벤처 엑소더스 열풍을 다소 잠재우고 있지만 여전히 인재 이탈이 지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인력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제조업들이 그다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고 있는 주가. 이같은 추세가 장기화되면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H조선 재무담당 임원인 K씨는 『우리 조선산업은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실적도 좋아 주당 2만원까지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그런데 모든 관심이 온통 벤처로 쏠리면서 지금은 1만원도 채 안된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H자동차 관계자도 『주가가 떨어지면 제조업 입장에서는 투자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크다』며 『사회적 자원과 자본적 자원의 배분이 왜곡되고 이는 미래를 대비한 적절한 선투자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이 직접 자금 조달시장의 왜곡으로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는가』라고 반문했다./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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