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불계로 끝나던 두 사람의 바둑이었다. 그런데 제2국에서 구리는 딱 반집을 이겼다. 최철한으로서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서반에 결정타를 얻어맞고서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고 또 버틴 일국이었다. 겨우 따라잡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끝내기의 실수가 나왔고 그것으로 주저앉고 말았으니…. 결국 제3국까지 오게 되었다. 새로 돌을 가려 최철한의 백번이 결정되었다. 구리는 제2국과 똑같은 포석을 선택했으므로 흑5까지는 제2국과 같다. 백6부터 최철한의 새로운 구상이 나타난다. 제2국에서는 백6으로 가에 협공했는데 패한 그 바둑을 그대로 펼칠 생각이 없어진 것이었다. 백10으로 협공을 서두른 것은 심중에 주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주문은 참고도1의 흑1로 뛰어나오면 백2로 위협하면서 상변을 그대로 집으로 굳히겠다는 것. 아마추어들은 유념하여 기억해둘 그림이다. 흑1로 뛰어나오는 것이 제일감이지만 지금은 다른 궁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 노련한 구리는 최철한의 주문에 말려들지 않았다. 흑11로 제꺼덕 끊어놓고 백의 응수를 물었다. 백은 포석의 기로에 섰다. 참고도2의 백1로 받으면 흑은 2로 둘 것이고 쌍방이 큰 모양을 건설하는 바둑이 될 터인데 아무래도 ‘선착의 효’가 있는 흑이 더욱 웅장해 보인다. 최철한은 일단 잘게 쪼개는 길을 선택했다. 백14로 갈라쳐서 큰 모양을 견제하자 어느덧 포석은 거의 끝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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