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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천문대… 관측자료 결정적 증거 제시"

김봉규 천문硏 박사, 삼국사기 등 분석 통한 논문 14일 英서 발표

경주에 있는 첨성대의 용도를 둘러싸고 그동안 학계에서는 천문관측용이라거나 상징적인 건물, 또는 제단일 것이라는 설이 분분했다. 천문대였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거 천문관측자료를 바탕으로 첨성대가 천문대였다는 주장이 다시 제시돼 주목 받고 있다. 김봉규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연구본부장은 7일 충남대에서 열리는 한국천문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ㆍ증보문헌비고 등 고서에 수록된 천문관측기록을 분석해 신라 첨성대가 천체를 관측하는 천문대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김 박사가 추정한 첨성대 완공시기는 선덕여왕 말기인 640년대. 선덕여왕 즉위년부터 한동안 천문기록이 없다 여왕이 사망한 647년에 갑자기 천문기록이 많아졌다는 이유에서다. 김 박사는 또 첨성대가 만들어진 후 기록된 유성의 낙하 지점이 모두 첨성대를 둘러싸고 있는 점을 첨성대에서 천제를 관측했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647년 이후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경주 지방의 유성관측기록은 모두 다섯 차례. 반월성에 2개, 황룡사와 반월성 사이, 삼랑사 북쪽과 황룡사 남쪽에 각각 1개씩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유성 낙하 지점은 첨성대에서 반경 2㎞ 이내에 위치한다. 김 박사는 특히 첨성대가 완성된 후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 수가 10배 이상 증가한 것과 질적으로 정밀해졌다는 점도 첨성대가 천문대였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541~640년에 3건에 불과하던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은 641~740년에 38건으로 급증했다. 반면 이 기간 고구려나 백제의 천문관측 기록은 총 5건에서 4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김 박사는 첨성대가 만들어진 후부터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은 질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혜성처럼 누구나 관측할 수 있는 천문현상은 상대적인 비율이 줄고 대신 행성이 달 뒤로 숨는 현상이나 순간적인 유성 출현 등 전문적인 천문학자들이 매일 밤 관측해야 얻을 수 있는 기록이 많아졌다"면서 "이 같은 증거로 볼 때 첨성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오는 14일 영국 더렘에서 개최되는 국제 고천문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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