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월가는 벌써부터 금리인상 대비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블랙록ㆍTCW그룹ㆍ핌코 등 대형 자산운용사의 채권펀드 매니저들이 금리인상에 따른 손실발생에 대비해 변동금리채권 매입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현재 금리가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손실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FRB가 금리를 올리지는 않겠지만 일단 금리인상이 시작되면 빠르고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금리상승기에 수익이 나도록 선제 투자에 나서고 있다.
구체적인 전략은 금리스와프 거래나 변동금리채권 및 물가연계채권(TIPS) 매입 등이다. 또 국채선물 매도 포지션을 취해 국채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헤지(위험회피)하는 방법도 구사하고 있다. 미국 채권형 펀드인 블랙록의 경우 15억달러 규모의 국채선물을 매도했다가 1월 금리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국 국채수익률이 상승했을 때 이를 청산해 0.81%의 수익을 냈다.
이와 함께 채권 듀레이션(채권투자 원금의 평균 회수기간)을 짧게 줄여 금리인상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TCW의 한 채권펀드는 듀레이션을 다른 채권형펀드보다 1년 짧은 4.2년으로 줄였으며 핌코 역시 지난해 초 4.4년이었던 220억달러 규모의 채권형펀드 듀레이션을 1월 말 현재 3.7년으로 축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에서 쓴 맛을 보고 채권시장으로 눈을 돌렸던 개인투자자들도 금리인상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변동금리채권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로 개인자금이 몰리면서 2월 마지막 주 이 펀드의 자금 순유입액 4주 평균치는 사상 최고치(12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처럼 월가 채권 투자자들이 금리인상에 대비하는 것은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이 미국의 경제회복 기대감을 높이며 금리인상 전망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8일에는 미국의 2월 실업률이 예상보다 낮은 7.7%로 발표되자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2.044%까지 오르며 지난해 4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 첫주에도 양적완화 조기 종료설이 제기되자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투매해 장기국채가 일주일 사이 3.1%나 폭락하며 연간 수익률 3%를 다 까먹었다.
문제는 금리인상을 우려해 단기 투자자들이 대거 '채권 엑소더스'에 나설 경우 채권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94년 FRB가 1년 사이 여섯 차례나 금리를 인상해 3.0%였던 금리를 5.5%까지 올렸을 당시 국채투매 현상이 나타나면서 30년 만기 채권 가격이 1년 사이 24% 가까이 폭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FRB와 싸우지 말라'는 월가의 격언도 있듯이 섣불리 금리인상을 예견하고 이 방향으로 베팅했다가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채권왕'으로 유명한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2011년 FRB의 양적완화 종료를 예상하며 가지고 있던 국채를 모두 팔고 공매도에 나섰다가 사상최악의 손실을 냈다.
FRB는 지난해 12월 금리인상 시점을 실업률 6.5%와 인플레이션 2.5%에 연계하는 새로운 통화정책을 제시했으며 벤 버냉키 FRB 의장은 기준금리 조기인상이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