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림은 지난 1960~1970년대의 정책금융시대에서부터 금융자율화(1980년대 중반), 금융개방화(1990년대 전후), 금융선진화(2000년대 전후)를 거치면서도 강도만 약해졌지 여전하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임원은 "선진금융 시스템만 만들면 뭐하나. 여전히 금융을 불법대출의 창구로 여기는 일부 권력자가 존재하고 측근인사를 요직에 앉히는 행위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완벽한 금융 시스템만으로 '정치금융'을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가 다시 술렁거리고 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검찰 소환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게이트성 사건에 또다시 우리은행이 연루된 것이다. 정치권력과 연계된 저축은행 사태를 겪으면서 고개를 떨궜던 것이 엊그제인데 부당대출 폭로가 나오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은행들이 다시 한번 권력실세들의 '쌈짓돈 창구'로 전락한 셈이다.
물론 정도는 과거에 비해 덜하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한보 특혜대출로 여러 은행장이 옷을 벗었고 2001년에는 한빛은행을 대상으로 한 불법대출 국회청문회도 열렸다. 지난해 저축은행은 권력형 비리로 연결되면서 자살로까지 이어졌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의 경우 과거에 비해 덜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어떻게 확산될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융계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여신에 냉혹할 정도의 시스템을 갖춰놓았음에도 개별적으로 사건이 터지는 데 대해 "인사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 정부가 들어선 뒤 금융계 임원이나 감사 등에 낙하산 인사가 유례없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는데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곪아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청탁도 많았다. 한 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이후 정치인들에게 인사청탁을 7~8차례 받았다"고 고백했다. "단 한 차례도 인사청탁을 받아준 적이 없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중 유일무이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거꾸로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다른 금융 임원들이 비일비재함을 보여준다. 한 민간연구소장은 "정치인들이 금융회사를 자신들의 돈줄이나 놀이터로 생각하는 한 금융 선진화는 요원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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