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공기업들이 부채감축 계획을 얼마나 엉터리로 작성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력을 구매하는 한국전력, 반대로 전력을 판매하는 6개 발전자회사는 서로 유리한 잣대로 전력판매 및 구입 비용을 추정해 부채비율을 낮췄다. 한전은 구입비용을 줄였고 반대로 발전자회사들은 판매수입을 부풀렸다. 예정처가 이를 바로잡아 계산해보니 한전의 부채비율은 2016년 152.9%가 아닌 178.9%로 올라갔다. 한국철도공사로부터 선로사용료를 받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품을 제거하고 보면 공단의 부채비율은 당초 767.1%보다 무려 172.2%포인트 증가한 939.3%가 된다.
이런 오류는 정부가 공기업에서 제출한 부채감축 계획을 조그만 신경을 써서 들여다봤다면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무관심한 것인지 무능한 것인지 미필적 고의인지 셋 중 하나다. 공기업들이 제출한 부채감축 계획을 아예 검증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무사 통과시킨 게 아닌가 의심까지 든다.
이번에 예정처가 검증해본 공기업은 장기 재무관리계획 수립 대상 41곳 가운데 7곳에 불과하다. 다른 공기업들의 자료에도 구멍이 뚫려 있지 않다는 보장이 없으니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공기업 부채 전망의 신뢰성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올해 222.1%인 공기업 부채비율이 2014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고 목표연도인 2016년에는 209.5%로 낮아질 것이라는 정부 전망은 이로써 이미 금이 갔다.
공기업 부채는 가계부채와 더불어 우리 경제를 옥죄는 양대 시한폭탄으로 등장한 지 오래다. 지난해 전체 286개 공기업의 부채는 463조원으로 국가부채 규모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공기업의 재정 건전성은 공공요금 결정에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무슨 일이든 전망이 엉터리라면 대책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 공기업 장기 재무관리 계획을 전면 수정해 다시 짜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