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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작 고속철 문책도 없나(사설)

말썽많은 경부 고속철도의 사업계획이 또 다시 전면적으로 수정됐다. 개통시기는 당초 계획보다 6년11개월, 1차 수정계획보다 3년6개월 늦은 2005년 11월로 조정됐다. 사업비도 89년 계획당시에는 5조8천5백24억원이었으나 93년 1차 수정계획에서는 10조7천4백억원으로, 이번엔 17조6천2백94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이 사업비도 완공연도를 기준으로 하면 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단군이래 최대역사라는 경부 고속철 공사가 완전 주먹구구식 산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정부는 또다시 자인한 셈이다.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질 않는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최종계획으로 내놓았지만 이를 믿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아직도 사업자체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부 고속철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다시 낄 생각은 않고 그냥 단추를 끼워 나갔으니 뒤틀리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도대체 사상최대의 국책사업이 이 모양이니 다른 사업은 말할 필요가 없다. 정치논리가 고속철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고속철이 착공된 것은 지난 92년 6월. 그해 12월의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다. 계획이 세워졌던 것이 89년이었으니 설계도 없이 무모하게 추진된 것이다. 설계도 없이 착공한 예는 세상천지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는 사전준비에만 10년, 지난해 고속철공사에 들어간 대만은 12년을 투자했다. 졸속공사에 부실이 따른 것은 당연하다. 상리터널에서는 공사중 터널밑에 폐광이 있는 것이 뒤늦게 발견돼 노선을 다시 조정했다. 지난 4월 미국의 감리회사 위스 제니 엘스너(WJE)사는 서울∼대전간 시험구간에서만도 곳곳에 부실공사가 자행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일부구간은 재 시공해야 하는 것으로 판정이 났다. 시발역을 서울역으로 하느냐, 용산역으로 하느냐 하는 것도 결론이 나있질 않다. 당초 지상역으로 계획됐던 대구와 대전역사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문민정부는 지하화하기로 결정했다. 공사비 증가나 기술적인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정치적인 고려다. 경부 고속철은 서울∼부산간의 물동량을 감안할때 필요하다. 그러나 당위성에는 경제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거꾸로 정치논리가 들어오면서 경제성은 전혀 계산되지 않았다. 건설 재 검토론도 일고 있다. 경제성과 채산성을 정밀분석, 사업의 추진여부를 판단 하는 것이 옳다.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고속철의 사업비는 결국 국민의 세부담으로 돌아오게 됐다. 가뜩이나 어려운 가계에 또 주름이 지게됐다. 국민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고속철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면 당연히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도,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다. 노태우정권때 잘못됐으면 문민정부는 이를 바로 잡아야 했다. 결국 문민정부의 최대 정책착오이자 실패작으로 남게 됐다. 고속철은 책임을 지겠다는 사명감의 바탕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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