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의 지분 29.6%를 소유한 2대 주주 국민은행은 지난 3월 카자흐스탄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한 달간 외환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 자금세탁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행장과 이사회는 물론 금융감독원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결국 카자흐스탄에서 두 차례 편지를 보내 관련 사실을 알려준 뒤에야 금감원은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일이다. 당시 한국은행 내 은행감독국은 미국계 은행의 규정위반 사항을 적발한 뒤 영업정지를 결정했다. 은행 측에 관련 사실을 통보하고 소명을 받는 과정에서 주한 미 대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관계자는 "미국계 은행이 자국의 감독당국뿐만 아니라 외교 채널을 동원해 우리를 압박했는데 부담이 컸다"면서"결국 첫 번째 영업정지 시도는 달성하지 못하고 이후 다시 문제를 발견해 어렵게 영업정지를 시켰다"고 전했다.
금융회사와 금융감독당국의 보고체계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극명한 대조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금융감독당국의 적발기능도 떨어지면서 사각지대는 더욱 넓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행의 각종 횡령과 내부통제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금융당국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관리소홀도 이번 사태를 야기한 원인으로 비판 받는 것이다. 국민은행처럼 한꺼번에 국내외 점포의 부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제는 금융당국은 발생한 일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은행의 경영부실이 전체 금융시장과 소비자에게 미칠 피해를 감안하면 당국의 정책과 감독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여론에 밀려 흔들리는 감독당국=국민은행 사태의 특징은 장기간 여러 명의 내부자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은행의 책임이지만 감독당국의 감시능력도 저하됐다는 것을 뜻한다.
은행을 직접 감시하는 금감원은 각종 사회적 요구를 따라가다 정작 은행의 감독과 검사 기능을 약화시켰다. 금융계 관계자는 "사회적 요구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행이 망가지면 발생하는 피해는 다른 업권보다 크다"면서 "균형감각을 지녀야 할 금융당국이 일종의 인기영합에 휩쓸리는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최근 전체 금감원 인력 중 70명이 동양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 주가조작 엄벌을 강조하자 금융위와 금감원에 각각 전담반이 설치되며 인력이 집중됐다.
소비자 보호와 서민금융지원이 강조되면서 금감원 소비자보호 부서와 카드ㆍ캐피털ㆍ대부업 등 2금융권 조직이 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은 업계와 감독원 모두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상대적으로 미비한 2금융권은 검사하는 데 품이 많이 들어 인원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2008년 금감원의 대대적인 조직개편도 결과적으로는 실패에 가까웠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당시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검사와 감독부서를 통합해 조직을 축소했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후인 2011년 국무총리실의 권고로 다시 검사와 감독부서가 나뉘었다.
공교롭게도 국민은행 지점의 각종 부실대출과 횡령이 벌어진 시기가 2008년부터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와 감독부서가 합치면서 책상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감독기능이 위주가 되고 검사기능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와 직접 맞서 논쟁하고 제재하는 검사업무는 중요도에 비해 '알아주지 않는' 업무로 꼽힌다. 결국 사고가 났을 때 피해가 큰 은행에 대한 감독과 검사가 소홀해진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정기적인 검사는 주로 은행 본점을 위주로 하며 지점은 사고가 발생할 때 위주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위ㆍ금감원 엇박자 행보=금융당국이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갈린 것도 은행산업과 감독정책을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다. 주요 사안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입장이 조금씩 달라지며 결과적으로 사각지대를 낳는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이원화된 사례는 해외에도 많지만 감독에 대한 정책과 집행이 갈라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면서 "현재 구조는 비효율과 사각지대를 낳아서 사고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라고 질타했다.
문제가 된 국민은행 BCC지점 보고 누락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은 다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BCC의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지분을 15% 보유해 자회사에 해당하므로 영업정지 사실을 알렸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회사는 중요 경영사항에 대해 보고하게끔 돼 있지만 판단은 금융회사가 한다"면서 "다만 현지 당국의 영업정지처럼 중대한 사항을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을 포함해 금융지주회사 등 금융회사 임원의 연봉공개에 대해서도 금융위와 금감원은 기준이 다르다.
금감원이 2010년 제시한 모범규준은 집행임원을 포함한 은행 경영진의 연봉총합을 공시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퇴임 후 성과에 따라 받는 보수도 포함된다. 반면 금융위가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는 상장회사 임원공시에는 개별 임원의 연봉이 공개된다. 여기에는 주요 은행도 포함된다. 다만 퇴임 후 성과급은 포함되지 않으며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ㆍ농협은행ㆍ수협은행은 제외된다. 금감원의 방안에는 개인별 보수가 나오지 않고 금융위의 방안에는 퇴직 후 보수가 누락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모범규준을 고치는 것도 어렵다. 금융위가 국회에 제출한 지배구조 개선법에 모범규준이 담겨 있어 새 개정안을 제출해 국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도 상환 수수료에 대해 애초 금융위 주도로 인하를 추진하다 금감원이 합리화 카드를 꺼내는 등 은행 산업의 주요 이슈에 양 기관의 방향은 갈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