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단행된 산업은행의 부행장 인사를 놓고 은행 안팎에서 뒷말이 많다. STX·동부·현대·한진 등 대기업 계열의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기업금융 부서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 좌천(?)됐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 중 가장 우수한 기업금융(CB) 역량을 자랑하는 산은에서 기업금융 부문은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서인 동시에 임원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 기업금융 담당 부서장들은 모두 지역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거나 한직 부서로 발령 났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기금부가 전멸한 것이다.
20일 산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산업계와 금융계를 뜨겁게 달궜던 STX그룹의 구조조정을 담당한 권영민 기업금융 4부장은 지난 16일 인사에서 강남 지역본부장으로 이동했다. 1986년 입행한 그는 이번 인사에서 유력한 부행장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돼왔다. STX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도 있었지만 1년 가까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 부장은 결국 서울 지역을 관할하는 지역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명목상은 부점장인 기금4부장에서 본부장으로 수직 이동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좌천이다.
현대상선·한진해운 등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 때문에 진땀을 뺏던 박형규 기금2부장 역시 부산경남 지역본부장으로 이동했다. 코오롱·동국제강 등 대기업 계열을 맡으면서 4개 기금부서 가운데 리스크 관리에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광남 기금3부장 역시 부행장에 오르지 못하고 호남 지역본부장에 머물렀다. 그나마 최종복 기금1부장이 검사부로 이동해 본부에 남은 것이 위안거리다. 하지만 그 역시 유동성 위기로 크게 흔들렸던 동부그룹에 특수목적법인(SPC) 구조조정 방식을 적용, 시장의 우려를 잠재웠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에서 소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산은의 한 관계자는 "기업금융부는 산은의 대표적인 영업부서이면서 대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정책금융의 한 축"이라면서 "지난 한 해 굵직한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고생했던 기금부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부행장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기획관리 부문인 종합기획부·인사부 등과 함께 임원들을 단골로 배출해왔던 기금부의 옛 위상을 감안하면 '죽 써서 남준 격'이 돼버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홍 회장이 누차 강조했듯이 △수년간의 업무실적 △평소 업무수행 자세 △평판 등을 충실히 고려해 인사에 반영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금부서장들이 못했다기보다 다른 부서장들이 이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는 얘기다. 실제 홍 회장은 이번 임원 임사에서 과거와 달리 청탁이나 정치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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