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사에 다니는 한수훈(33)씨는 지난 2007년부터 국민차로 불리는 준중형 세단 '아반떼'를 몰았다. 이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게 된 한씨는 원래 5~6년쯤 열심히 돈을 모아 널찍한 중형차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바꿀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한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빠듯한 월급에 생활비 쓰고 저축을 하기도 힘겨운데 자동차 유지비로 더 많은 돈을 쏟아부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씨는 "기름값과 보험금만 한 달에 50만원 정도 든다"며 "중형차를 사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유지비를 아낄 수 있는 경차로 바꾸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씨의 사례처럼 자동차를 바꿀 때 차급을 높여 사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서민 경기의 흐름이 '상향 대체 붕괴'라는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30일 자동차 전문 리서치 회사인 '마케팅 인사이트'가 최근 5년간(2009~2013년) 자동차를 구입한 소비자 10만명을 대상으로 구매 패턴 변화를 조사한 결과 소형·준중형 세단을 타다가 중형으로 바꾼 사람의 비중이 지난 2009년에는 9.1%에 달했으나 작년에 5.9%로 급감했다. 중형 세단 소유자가 준대형으로 차급을 높여 산 소비자 비중 역시 같은 기간 4.9%에서 4.2%로 내려갔다.
이 조사에서 기존 소형·준중형과 중형 세단 보유자 모두 낮은 차급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가격과 구입 조건'을 지목한 사람이 각각 26%, 32%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연비와 외관 스타일 등을 꼽은 소비자는 11~12% 수준에 불과했다.
안주현 마케팅 인사이트 연구본부 팀장은 "불황이 계속되면서 페밀리 세단을 타는 자동차 소비자들의 이른바 '상향 대체' 성향이 붕괴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의 경차는 차종이 기아차 '모닝'과 '레이', 한국GM '스파크' 등 3종에 불과함에도 판매량은 지난 2008년 13만4,303대에서 2013년 18만2,021대로 26% 이상 늘었다.
이처럼 '불황 국면'이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영향을 미치면서 20대 소비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9년 당시 '생애 첫 차 구매자' 중 20대가 45%를 차지했으나 4년 만에 이 비중이 37%로 쪼그라들었다. 또 전체 신차 구입자 중 생애 처음으로 차를 산 소비자의 비중 역시 같은 기간 28%에서 20%로 확 줄었다.
반면 실용성이 우수하고 연비가 좋아 경제적인 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SUV의 경우 반복 구매자가 2009년 3.2%에서 지난해 6.2%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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