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분기 경제성적표는 전 분기 대비 0.3%, 전년 대비 2.2% 성장이라는 총점수도 암울하지만 내역을 뜯어보면 그야말로 처참하다.
일단 0.3%(전 분기 대비)의 성장률 중 제품 재고(재고 증감 및 귀중품 순취득)의 기여도가 0.2%포인트나 됐다. 국내총생산(GDP)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둬도 늘어난다. 이 같은 '재고 효과'를 제외하면 2·4분기 성장률은 0.1%에 불과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온갖 악재에서도 한 걸음씩이나마 나아가던 경제 성장세가 아예 멈춰버렸다는 뜻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수출·내수 기업 가릴 것 없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보고 생산량을 늘렸지만 세계 경기 회복세 부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으로 제품이 팔리지 않아 생산한 제품 상당수를 재고로 쌓아둔 것으로 보인다"며 "2·4분기는 재고가 끌어올린 질 나쁜 성장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추세적 원화 강세, 중국 경기 둔화, 그리스 우려 등 3각 파고에 수출도 부진했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순수출의 2·4분기 성장률 기여도는 -0.2%포인트였다. 성장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갉아먹었다는 뜻이다.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지난해 2·4분기부터 1년간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2002년 2·4분기~2003년 1·4분기 이후 약 12년 만의 최장기간 마이너스 행진이다.
명목 GDP의 절반 이상(54%·2014년 기준)을 담당해 버팀목이 돼야 할 민간소비는 메르스로 직격탄을 맞았다. 4~5월 부동산·증권 등 자산시장 훈풍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릴 조짐을 보였지만 6월에 터진 메르스의 영향은 막대했다. 2·4분기 민간소비 증감률은 -0.3%(전 분기 대비)로 1·4분기의 0.6%에서 급반전했다. 세월호 여파가 한창이던 지난해 2·4분기(-0.4%) 이후 1년 만에 최저치다.
우리 경제에는 운도 따르지 않았다. 가뭄으로 농림어업 부문의 생산량 증감률은 -11.1%(전 분기 대비) 폭락했다. 1990년 1·4분기(-16.8%) 이후 25년 만에 최악의 결과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아 올 성장률이 정부가 공언한 3%는 고사하고 한국은행이 제시한 2.8%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본격적인 2%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는 셈이다. 우선 2·4분기가 재고에 따른 성장이었다는 점이 문제다. 이 실장은 "앞으로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기보다는 재고를 먼저 소진해 성장률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의 앞날도 어둡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20일까지 수출액은 253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8.1%나 감소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50원을 넘어서는(원화 약세) 등 오르고 있지만 환율이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면 적어도 1년의 시차가 걸린다"며 "반면 중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등의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어 하반기에도 수출은 안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메르스 여파가 3·4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전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외국인 관광은 통상 몇 달 전에 예약을 하기 때문에 메르스로 줄어든 관광객이 회복되기까지는 시차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올해 2.8% 성장률을 기록하려면 3·4분기, 4·4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1%대 초반으로 급반등해야 하는데 이런 추세라면 힘들다"며 "올해 2.5% 성장률 수성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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