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난 2012년 기업의 내부 경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준법지원인제도가 허울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정·관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 역시 준법지원인을 두고 있었지만 불법·탈법행위를 못했다. 더군다나 상법에 의무만을 규정했을 뿐 별도의 제재 규정이 없는 관계로 전체 대상 기업 셋 중 하나는 준법지원인을 두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와 국회에서는 처벌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반면 일선 기업들은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제도 도입 당시 불거졌던 '법조계의 제 밥그릇 챙기기 규제'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민병두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준법지원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자산규모 5,000억원 이상 상장회사 304곳 중 123곳 만이 준법지원인을 선임했다고 답했다. 선임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상장회사는 82곳, 99개사는 미응답했다.
준법지원인제도는 2012년 기업의 내부 통제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상법에서는 자산규모 5,000억원 이상이 상장회사에 대해 △변호사 자격을 가진 자 △법률학 조교수 이상의 직에 5년 이상 근무한 자△상장회사에서 감사·감사위원 또는 법무부서에서 10년 이상(법률학 석사 이상의 경우 5년) 근무한 자 중 1명 이상의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하고 있다.
상법에서 준법지원인을 선임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 상장사 중 절반가량이 준법지원인을 두지 않고 있는 이유는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은 준법지원인을 비용을 들여서까지 채용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준법지원인을 두더라도 형식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경남기업 역시 법무팀장이 준법지원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진의 결정이 법에 저촉되더라도 준법지원인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한 대기업의 준법감시팀 부장은 "법에 명시된 만큼 법무팀과는 별도로 준법지원인을 두고 있지만 기존의 사내 변호사가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이사회에 보고하는 일을 제외하면 기존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감사나 사외이사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준법지원인 제도 자체가 '옥상옥'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한 중견기업의 관계자는 "법무실 인력이 많은 대기업의 경우는 겸직이라도 시키지만 상황이 열악한 중견·중소기업은 자격 요건을 갖춘 준법지원인을 신규로 채용해야 한다"면서 "비용 부담도 문제지만 실효성이 없는 제도를 이행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역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형 공기업의 감사팀 관계자는 "준법지원인 도입의 실익을 검토했지만 선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공공기관운영법의 규율을 받는데다 감사원 감사도 있어 이미 경영진에 대한 견제 수단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법조계는 지난해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의 기업어음 불완전판매 사례나 올해 경남기업의 불법 비자금 조성 등 기업들의 문제를 사전에 막기 위해 준법지원인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영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준법지원인제도 도입 당시 상법에 처벌 규정을 넣지 않은 것은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라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내실을 기하기 위해 대상 기업을 자산규모 2,000억원 수준으로 늘리고 강제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회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다. 상법에 미선임 기업에 대한 제재 조항을 넣는 것과 함께 의무 공시사항으로 규정해 선임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복안이다. 민병두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금감원과 공시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별도로 상법에 처벌 규정을 넣는 방안고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