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도 신선하다. 영화를 본 느낌이다. 미래 영화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첨단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탄생한 영화 ‘베오울프’. 실사(實寫) 영화보다 더 사실적이다. 컴퓨터로 그려낸(잡아낸) 애니메이션 화면 치고는 너무나 생생하다. 배우 얼굴의 솜털 한 올부터 사방으로 튀는 땀 한 방울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발명한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봤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할리우드 여신(女神) 안젤리나 졸리의 나신(裸身)은 실제 모습인지 재창조된 그림인지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 세기 전 탄생한 영화는 처음엔 말을 배웠고(1920년대 토키영화) 이후 칙칙한 흑백에서 총 천연색(1950년대 칼라 필름)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게다가 90년대부터 컴퓨터그래픽(CG)으로 치장하기 시작하는 등 영화 기술은 꾸준히 그리고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 정도로 ‘진화’하리라고는 아마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2007년 11월. 아마도 영화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진일보한 영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신작 ‘베오울프’가 14일 전세계 동시 개봉됐다. 영화는 유사 이래 가장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유럽의 영웅 서사시 ‘베오울프’를 원작으로 풀어나간다. 때는 6세기경 덴마크. 영웅 베오울프(레이 윈스톤)는 흐로스가(안소니 홉킨스)의 왕국을 괴롭히는 괴물 그렌덜을 처치한다. 그렌덜의 어머니 물의 마녀(안젤리나 졸리)는 베오울프의 부하들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베오울프는 다시 복수를 다짐한다. 물의 마녀를 죽이러 계곡으로 들어간 베오울프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결국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사람들의 평가가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한 차원 높은 CG 기법이 관객의 소름을 돋게 한다. 모든 공로는 감독인 저메키스에게 돌려야 할 듯 싶다.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과 몸에 센서를 달아 그 움직임의 이미지를 포착해 이를 컴퓨터 상에서 재구성하는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 촬영 당시 안젤리나 졸리는 임신 3개월의 몸으로 온 몸에 센서를 달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이 기술은 감독의 전작인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도 사용됐지만 이번에 더 정교해졌다. 다만 높은 영화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통이 산산조각 나는 등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은 아쉬운 대목이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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