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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중앙은행 독립성 `흔들'
입력1998-10-13 19:15:00
수정
2002.10.22 07:50:09
사상 유례없는 금융위기가 계속되자 요즘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독립성이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권과 행정부가 대중적인 인기를 의식해 중앙은행에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와 통화정책 완화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외풍을 타면서 중앙은행의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이 비상상황이긴 하지만 통화가치 안정을 통한 인플레 억제를 최고가치로 여기고 있는 선진국 중앙은행으로선 객관적이고 독자적인 판단이라는 자신의 고유가치가 위협받는 지경에 몰린 셈이다. 이에따라 양자간의 긴장관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은행의 위상과 관련, 현재 시금석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중앙은행의 교과서」로 불리는 독일의 분데스방크와 프랑스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이다.
특히 독일의 경우 게하르트 슈뢰더 차기총리가 최근 한스 티트마이어 분데스방크 총재에게 수차례 금리인하를 촉구하며 중앙은행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슈뢰더 총리는 한술 더떠 12일엔 차기정부에서 신임 재무장관에게 더욱 강화된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협박했다.
티트마이어 총재는 물론 자국내 경제여건을 감안해 이같은 요구에 완강히 버티고 있지만 점차 힘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지난 주초 『금리 인하를 금기시해선 안된다』며 종전의 입장에서 한발 후퇴한데 이어 12일엔 관계자의 입을 빌려 세계경제가 더욱 악화한다면 독일도 금리인하를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현재로선 금리인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을 달긴 했다. ★표 참조
프랑스도 최근 리오넬 죠스팽 총리가 중앙은행에 대해 금리인하를 거듭 촉구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은행 통화정책위는 『금리 인하가 고용을 촉진하고 경기를 부양시키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며 사회당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또 일본도 최근 금융개혁과 경기부양을 적극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위상이 급격하게 위협받고 있다. 일본 총리의 수석 경제고문인 오하라 이치조(大原一三) 자민당의원은 12일 일본(日本)은행이 금융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처했으며 원칙만 고집하면서 기존 통화정책을 고수한 게 잘못이라고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는 이날 아시아 통화기금(AMF) 창설을 반대하는 미국도 함께 비난했다.
한편 독일·프랑스 등과는 달리 미국과 영국의 중앙은행은 정부의 입장에 발맞춰 금리인하를 단행함으로써 일단 그 명성에 금이 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더욱이 미국과 영국정부가 조기에 금리를 인하토록 중앙은행에 압력을 넣기로 비밀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일단 부인했지만 지난해 취임 당시 금리 결정권을 영란은행에 넘기면서 분데스방크와 맞먹는 중앙은행으로 키우겠다던 그의 약속은 일단 빛이 바랜 셈이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도 금리인하에 대해 여러차례 말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헤지 펀드에 구제금융을 제공,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지금 세계경제는 중앙은행의 모델로 칭송받던 분데스방크와 FRB마저 흔들릴 만큼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지금 정치논리와 자신의 고유가치 사이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야 하는 중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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