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산업은 한ㆍ중ㆍ일 3국이 경합하는 동북아 경제구도에서 보면 독도와 같은 존재입니다. 한치 양보도 없이 서로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세정장비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한ㆍ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앞둔 국내 부품산업의 현주소를 이같이 말했다. 부품산업이 한국경제의 기반이지만 중소기업 홀로 일본의 시장 선점과 중국의 맹추격을 막아내기 벅차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국내 부품산업은 현재 전자ㆍ자동차 등 수출 주력업종 부품의 대일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산업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연간 수출 2,000억달러를 돌파했다는 반가운 소식 이면에는 지난 11월까지 대일무역적자가 158억달러에 이른다는 달갑지 않은 수치가 숨어있다. 반도체ㆍ휴대폰 등 수출효자 품목의 핵심부품을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완제품 수출로 흑자가 커질수록 대일적자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LCD·휴대폰 부품 부문의 핵심부품 수입 비중은 90년 37.1%에서 2000년 54.8%로 급증했다. 특히 반도체는 지난해 수출이 229억6,000만달러였으나 반도체 및 제조장비의 수입액은 248억6,000만달러에 달한다. 이 같은 구조 탓에 IT업종의 수입유발계수(제품 1개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수입 중간재 비율)는 0.47~0.55로 일본(0.13)의 4배에 이르고 있다. 핵심부품의 수입으로 중소부품업체들이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국내 산업구조는 수출이 늘어도 국내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성장 촉진을 통해 분배를 이루고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구조를 정착시켜 ‘수출증가→투자증가→고용확대→소비촉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작동될 수 있도록 국내 산업간 연관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현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박사는 “부품소재산업에 종사하는 3만여개 기업중 99%가 중소업체로 수요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대ㆍ중소기업간 협력을 통한 부품산업 활성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ㆍ중소기업간 협력을 통한 부품산업개발 체제 구축은 우선 중소기업의 특성을 감안 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단순하게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부품산업을 육성하기 보다는 경쟁력을 갖춘 산업 육성정책 차원에서 각 중소기업의 특성에 맞게 수요기업과의 연계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동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부품소재산업 관련 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온 수급기업간 공동 연계 강화가 중요하다”며 “투자여력이 있는 수요기업들이 핵심 부품소재 관련 기업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으로 과감한 대응투자를 하거나 제도적 장벽을 없애준다면 큰 사회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대 ㆍ중소기업간 부품개발의 협력의 성공을 위한 실천과제로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지분투자 확대와 이를 위한 정부의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대기업의 지분 출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한 개선을 대ㆍ중소기업간 상생을 위한 선결과제로 꼽고 있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선진국의 부품소재 관련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선 선진기업과의 적극적인 기술제휴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며 "대기업들이 부품업체들과 신기술 관련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해 부품업체들이 핵심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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