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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지금 '안전경영'중] "사고예방·대처 못하면 기업 전체 흔들"… 안전관리 최대 화두로

항공·해운업계 조종사 충원하고 훈련 강화

건설업계 현장 상황 경영진에 실시간 보고

삼성전자 3조·현대제철 5,000억 투자 결정

안전관리자 직급 상향·작업 중지권 부여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달 24일 회원사에 긴급 지침을 내려보냈다. 올 들어 연쇄적으로 발생한 대형 화학사고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세월호 사고로 안전관리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사업장 안전경영 체계 점검과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선제적 예방활동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경총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산업계에 안전관리가 핵심 경영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그룹 총수까지 산업 현장을 잇따라 방문, 안전관리 강화를 지시하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전자·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췄지만 산업 현장 곳곳에서 안전사고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각 기업들은 특히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 사고발생을 사전에 막는 선제적 대응과 사고발생시 대처능력 모두에서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업 자체가 뒤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개별 사업장에서는 물론이고 전사적으로 기존 안전대책을 전면 재점검하고 보강을 서두르고 있다.

◇기업마다 안전관리가 최대 경영 이슈 부상=최근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조선·해운·항공·철강·정유·화학·정보기술(IT) 등 전 산업 분야를 망라한다. 특히 세월호 사고와 같이 한 번 발생하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항공·해운 등 수송업계는 안전관리 강화가 '발 등에 떨어진 불'이다.

한태근 에어부산 대표는 연휴였던 지난 5~6일 이틀 연속 출근해 안전운항팀과 운항통제팀·캐빈서비스팀 등 연휴에도 근무하는 부서를 방문해 안전관리 상황을 점검했다. 현장에서 직접 실무 직원들을 격려하는 동시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취지였다.

제주항공은 세월호 사고 직후인 지난달 말 60세 이상의 고령 조종사들에게 '비행시간 조정요청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이는 개인의 피로도에 따라 회사에 비행시간을 줄이거나 조정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제주항공의 60세 이상 조종사는 전체 205명 중 30명 안팎이며 회사는 이번 조치에 따른 운항승무원 부족에 대비해 연말까지 60명의 조종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 샌프란시스코 공항 사고를 겪은 아시아나항공은 올 들어 운항승무원의 시뮬레이터 훈련 기준을 기존 연 4회 8시간에서 연 5회 10시간 이상으로 늘렸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최근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비상연락망을 점검하고 사고대응 체계를 다시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단일 업종으로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건설업계도 분양 성수기를 맞아 건설 현장은 물론 모델하우스의 안전관리 강화에 팔을 걷어부쳤다. CEO와 재무담당 최고책임자(CFO)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슈를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받고 있는 삼성물산은 이달부터 현장에서 매달 한차례 비상대피 훈련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대림산업도 세월호 사고 이후 각 현장에 발생 빈도가 높은 사고에 대비해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안전 관련 매뉴얼을 마련해 유형별로 일어나기 쉬운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을 공유하도록 했다.



해양 사고 위험에 늘 노출돼 있는 해운업계도 인명 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한 훈련과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올 들어 매달 인명 안전과 관련된 포스터를 제작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는 등 인명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고 한진해운은 인명이나 선박, 해양환경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한 훈련 및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관련 투자 늘리고 사전·사후 대처능력 제고 서둘러=세월호 사고와 최근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안전사고는 기업에 안전경영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기술은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게 적지 않지만 산업 현장의 안전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안전관리 조직과 인적역량을 강화하고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지난해 초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 누출을 비롯해 연이은 사고로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삼성은 올해 말까지 안전환경 분야에 약 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그룹 안전환경 컨트롤타워인 안전환경연구소의 조직체계를 기존 2팀에서 6팀으로 확대 개편하고 환경안전 전문인력도 300명 넘게 확충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철강 계열사인 현대제철의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로 대두된 상황이다. 2012년 9월부터 당진제철소에서만 10여건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현대제철은 올 들어서도 사고가 이어지자 안전 관련 투자예산을 당초 1,2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4배 넘게 늘렸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안전관리 인력도 분야별 외부전문가 영입 등을 통해 기존에 밝힌 150명에서 200명으로 늘리기도 했다"며 "현재 300여명 규모의 상설점검반을 편성해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관련책임자의 직급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달 화재 사고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은 안전관리자의 작업중지권 발동과 사고위험 경보제 도입 등 한층 강화된 대책을 내놓으면서 각 사업본부 산하의 9개 안전환경조직을 대표이사 직속의 안전환경실로 개편하고 총괄책임자도 전무급에서 부사장급이 맡도록 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12월 안전보안 부문을 본부급의 사장 직속 안전보안실로 격상하고 외부 전문가인 전일본공수(ANA) 출신 야마무라 아키요시 부사장을 영입했다. 또 지난해 9월 중국 우시공장 화재로 생산차질을 빚은 SK하이닉스는 올 초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환경안전팀을 본부로 격상시키고 본부장에 부사장을 선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안전환경 조직 확대와 인력확충, 시설투자 못지않게 안전교육과 사후 대응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기업들이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투자를 늘린 결과 기술적 부분에서는 위험요소가 상당히 개선됐지만 안전문화에 대한 임직원들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영선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재해는 환경요인과 개인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사업장 환경은 크게 개선된 반면 임직원들의 안전의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기업들의 안전관리가 잘못된 의식과 관행을 바로잡고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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