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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것은 신속한 재정사업 추진으로 경기 활성화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정부는 시행령인 장관 승인에 의한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권한을 법으로 정해 4대강 사업처럼 재해예방과 국가정책적 판단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차질을 빚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이 자칫 정부 재정지출 사업의 '묻지마 식' 투자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대상이 대폭 확대되고 장관 승인에 따른 면제가 법적인 권한을 가질 경우 재정집행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 경제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 논리에 의한 무분별한 사업집행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낙후된 여건으로 경제적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업부실 우려가 높은 대규모 재정사업을 대폭 확대하려고 나설 경우 지방재정 악화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도 만날 수 있다. ◇경기부양의 딜레마=정부가 내년에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정부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대상 확대는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경기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조기집행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부실 재정사업이라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비타당성 조사면제로 대규모 재정투입에 따른 경제적 타당성을 검증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결국 대규모 예산낭비를 초래할 수 있어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그동안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나쁘게 나올 것을 우려, 의도적으로 이를 피하기 위해 사업예산을 쪼개던 대규모 재정사업의 면제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국회의 승인 없이도 정부가 '묻지마 식' 재정사업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사업의 속도를 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경제적 타당성을 검증하지 않는 사업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은 국가 재정건전성을 염려하지 않는 처사"라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 받는 사업이 확대되면 예산방비는 물론이고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재정에는 독이 될 수도=예비타당성 조사면제가 확대되면 지방자치단체들은 대규모 재정사업을 늘리려 할 게 뻔하다. 그동안 낙후된 지역여건으로 경제적 평가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으며 신규사업 승인에 차질을 빚었던 걸림돌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지역 균형발전 명분을 앞세워 국회와 중앙정부를 압박하며 대규모 재정사업 추진에 나설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지방공항의 적자 사례처럼 대규모 재정이 투입된 지방사업이 부실로 이어질 경우 지방재정 악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예비타당성 조사면제로 국가 재정사업이 늘어나는 가운데 사업부실화 우려가 훨씬 높은 지방 사업들이 정치적 바람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늘어날 경우 지방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사업이 늘어나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경쟁적으로 대규모 재정사업을 추진하려 할 것"이라면서 "이럴 경우 정부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하게 되고 사업부실 위험이 큰 재정사업이 대폭 늘어 결국 지방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대규모 개발사업에 앞서 시행되는 개략적인 타당성 조사로 해당 사업의 경제성 분석, 투자 우선순위, 적정투자 시기, 재원조달 방법 등을 검증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에서 직접 수행하거나 수행자를 선정해 관리한다. 다만 기초ㆍ원천기술개발 등 순수 연구개발(R&D) 성격의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경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총괄해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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