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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경제에도 죗값이라는 게 있다. 잘못된 경제행위에 대한 벌이다. 과잉투자의 벌로 불경기가 발생하고 기업들의 투자 기피로 실업자가 양산되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이다. 경제에서의 `죄와 벌`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각 분야에서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증시에서 외국인이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주가지수가 왜곡되고 있는 것도 내국인이 떠난 죗값이나 다름없다. 증시기반을 키우지 않고 기관을 육성하지 않은 탓이다. 더 나아가면 주식투자자를 빈털터리로 만들고 중산층을 몰락하게 한 게 죄다. 최근 노사정이 합의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안`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계는 임금안정에 협력하고 경영계는 인위적 고용조정을 자제하기로 했지만 그 죗값으로 요구되는 것은 고통분담과 모두의 인내다. 이로 인해 물가가 치솟아도 앞으로 상당수 기업들이 임금동결을 추진할 게 뻔하고 그 대가로 사람을 줄이는 데 눈치를 봐야 할 처지가 됐다. 물론 죄는 투자부진이다. 여기에는 세계경제 침체와 정치불안 등 다양한 부수적인 죄들이 등장한다. 줄어들지 않는 신용불량자와 늘어만 가는 서민계층의 그늘도 어딘가에 잘못된 행위가 있었기에 잉태된 우리의 죗값이요 벌이다. 문제는 이런 죗값을 야기한 경제행위를 과연 누가 저질렀으며, 그 죗값을 누가 치르고 있느냐는 것이다. 또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죗값을 치러야만 해결될 수 있느냐는 것도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그동안에는 세계경제의 침체를 원죄로 거론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올해 20년 만에 최대 호황을 기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데다 만성 불황에 시름하던 일본과 유럽경제조차도 회복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 침체가 국내 불황의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반대로 회복의 기류를 타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현실이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면 죄의 근원을 다른 데서 찾아봐야 한다. 그것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제때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못한 실정(失政)과 실기(失機), 그리고 난정(亂政)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남들이 다 편승하고 있는 경제회복의 흐름에서 우리만 벗어나 있을 리 만무하다. 벌은 죄지은 사람이 받는 게 마땅하다. 법이 그렇고 세상 이치가 그렇다. 그런데 우리 경제를 보면 죄는 다른 곳에서 짓고 국민들만 혹독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용택 <증권부 차장> yt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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