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오 신지는 백56을 두기 전에 30분을 숙고했다. 지금의 형세를 보면 흑은 좌하귀, 좌상귀, 우상귀에 확실한 실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백은 우하귀를 점령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우하귀는 심히 엷어서 아직 확정지라고 볼 수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하변도 아직은 박약하다. 원래 다카오 신지의 제일감은 하변의 백진을 보강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곳을 지키고 있다가는 힘없이 밀려버릴 것만 같다. 고심끝에 다카오는 백56이라는 다소 허황한 수를 선택했다. 귀와 변은 어차피 흑이 모두 선점한 형편이니 드넓은 중원 경영에 희망을 걸어 보자는 일종의 승부수였다. 백56의 허황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장쉬는 흑57로 재차 실리를 취하였다. 다음 순간 다카오의 백58이 놓였다. 허공에 치는 또 하나의 말뚝. 장쉬는 다시 그것을 비웃듯 흑59로 껴붙였다. 좌변 백진마저 폭파해 버리겠다는 득의 껴붙임. 좌변의 실속을 도려낸 장쉬는 흑65로 좌변 백대마 전체의 사활을 위협했다. 다카오는 자신을 타일렀다. 거의 절망적인 흐름이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 한다. 이 판을 져도 아직 한 판이 남아 있다. 그 순간 장쉬에게서 완착이 나왔다. 흑67로 그냥 뻗은 이 멍청한 수. 노타임으로 68이 놓였다. 회심의 적시타였다. 흑67로는 참고도1의 흑1로 젖힐 자리였다. 흑7까지가 예상되는데 이것이라면 흑의 필승지세였다. 흑69는 궁여지책. 참고도2의 흑1로 반발하고 싶지만 백2 이하 6으로 흑이 망한다. (70,78…68의 왼쪽. 73…61)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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