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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의 남성학] 중국인의 性철학
입력2005-07-27 16:13:17
수정
2005.07.27 16:13:17
자연의 법칙이자 가장 큰 德
‘천지가 합하지 않으면 만물이 생겨나지 못하게 된다.’
‘예기’에 나오는 말로 중국인의 정신철학을 지배하는 명제인데 남녀가 화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출산하는 것이 곧 자연의 법칙이며 가장 큰 덕이라는 말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대표적인 자연 현상인 운우(雲雨)라고 하는데 그 유래는 전국시대의 시인이었던 송옥의 ‘고당부’란 책에서 비롯되었다.
‘왕이 고당에 이르러 꿈을 꾸었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베개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여 사랑을 나누었다. 그 여인은 새벽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밑을 배회할 것이라고 했다.’
이 글에서 구름은 애액을 의미하고 비는 정액을 뜻한다. 해서 남녀의 행위를 운우라고 하게 되었으며 성교를 우주만물이 생성하는 위대함으로 찬미했다. 그래서 중국인의 성에 대한 관념은 생명력을 근간으로 한다. 이에 따라 독특한 결혼문화가 있었으니 전방제로 지아비가 요절하면 남편의 형제나 심지어는 시아버지에게 다시 시집가는 결혼 형태이다.
전방제는 부계 씨족사회 시대에 이루어졌는데 씨족에 시집 온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생산력(출산과 노동)의 손실을 의미했다. 그래서 망자의 직계가족과 재혼을 시켰다.
두 번째는 자매가 함께 시집가는 양첩제. 신부 동생이나 같은 성을 가진 여종을 함께 딸려 보냈으니 이들을 잉첩이라 했다. 잉첩은 정실은 아니지만, 지위는 첩에 비해서는 높았는데 최초로 자매가 함께 시집간 예는 요임금이 두 딸을 순임금에게 준 것이다.
잉첩은 결혼할 때 잉싱이라고 하는 남성노비를 데리고 갔는데 은밀한 정부 노릇을 해주었다. 이러한 잉첩제도는 ‘두 여자가 함께 기거하면 그 뜻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는 비판에 따라 한나라 때부터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권세가들은 소첩, 하처라는 이름으로 두 명의 아내를 맞았다.
함께 유교를 숭상하고 지리적으로 중국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탓에 중국과 성문화나 결혼제도가 유사했던 우리나라에는 잉첩제도가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신라의 일부 귀족과 왕실에서 세자빈을 간택할 때,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후궁을 들인 경우가 있을 뿐이다.
모계사회인 원시공동체 때는 여성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다. 남성은 씨내리에 불과했으며 어떠한 권리도 누리지 못했다. 그러기에 수만 년 동안 여성에게 억압(?) 받았던 남성들이 씨족 부계사회가 되자 남성중심의 권위적인 결혼문화를 만들어 냈으니, 그 것이 바로 전방제와 양첩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고 성에 대한 개방과 권리 주장이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성문화나 결혼풍속에서 있어 여성들의 복수(?)가 염려되기도 하는데, 성 트러블로 인한 이혼율의 급증이 전조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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