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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종합상사] 1. 수출첨병서 `위기의 뇌관`으로

6ㆍ25 이후 기아(饑餓)선상을 넘나들던 세계 최빈국 한국이 불과 40여년만에 세계 13위의 교역대국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맨몸으로 시장을 개척한 종합상사`가 자리잡고 있다. 자원빈국에 기술마저 없던 대한민국. 빈곤탈출의 유일한 출구는 빌린 자본과 기술로 원자재를 가공하고 이를 되팔아 달러를 버는 것이었다. 종합상사는 바로 이 척박한 토양 속에서 `수출입국`이란 국가적 과제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는 지금 그들에게 `환난의 주범`, `분식회계의 주역`이라며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되새겨보면 지금 종합상사가 앓고 있는 중병은 한국이 선진국 문턱으로 오기까지 미루고 미뤘던 `성장비용`의 퇴적물이다. 지난 30년간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종합상사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위기에 처한 이들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본다. 지난 1982년 여름 어느 날 SK그룹(당시 선경그룹)의 대회의실에선 전 계열사 CEO들과 핵심 임원진이 모두 모였다. 그룹의 중장기 경영전략을 모색하기 위해서 였다. 고 최종현 SK회장은 이 자리에서 "종합상사는 물건을 사거나 팔 때 상대방에게 자금을 대부해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비해 이윤은 겨우 1~2%이고 한번 문제가 생기면 투자한 자금을 송두리째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해서는 기업을 정상적으로 경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마치 20여년후 펼쳐질 그룹의 위기를 정확하게 내다보는 듯한 지적이었다. 이어지는 고 최 회장의 말. "우리나라 종합상사들의 운영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이익보다는 실적에 너무 치중한다. 이 때문에 덤핑으로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심지어 노 커미션으로 물건을 팔기까지 한다." 고 최 회장의 우려는 지금 현실로 드러났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은 부실책임을 지고 사회와 격리됐고 이미 7대종합상사 중 3개가 워크아웃 혹은 자본잠식상태에 빠져 국내외 채권단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수출 한국`을 선도하던 종합상사가 이제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위기의 뇌관`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종합상사, 그들은 누구인가 지금은 모두 고개를 돌리는 애물단지지만 종합상사는 지난 30년동안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왔던 견인차이자 엔진이었다. 종합상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75년. 당시만 해도 고작 가발이나 만들어 팔던 우리나라는 종합상사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동인을 얻었다. 실제로 지난 76년 22.6%에 불과했던 중화학공업 수출비중은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84년 68.4%로 급상승했다. 싸구려 경공업제품`이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던 당시 상사맨들은 세계의 오지 구석구석을 뒤지며 몸으로, 땀으로, 때론 눈물로 바이어를 설득하고 고정거래선을 만들어 `공업 한국`의 기반을 구축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종합상사는 국가 최악의 환란 위기를 극복하는데도 여지없이 선두에 섰다. IMF(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였던 지난 98~2000년 종합상사가 일궈낸 무역흑자는 총 1,544억달러.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빠른 시기에 구제금융을 조기 상환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국가자산 상사 네트워크 종합상사가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지금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엮어내고 있는 살아있는 자산이다. 촘촘하게 짜여진 해외법인, 지사망을 통해 한발 앞선 생생한 현지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물론 지구 반대편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켜 무형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동하는 수익원이다. 지난 30년동안 7개 종합상사가 구축한 글로벌 거래선을 합산하면 전 세계 2만여개. 종합상사가 배출한 상사맨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노하우,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수출산업의 첨병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상사 해외법인ㆍ지사 등은 개별기업의 자산을 넘어서 수많은 중소기업ㆍ벤처기업의 해외진출 전초기지로 자리잡고 있다. 현오석 무역연구소장은 "제조업체들이 현지 판매망을 구축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종합상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종합상사가 사라지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단언했다. ◆모든걸 뜯어 고쳐야 한다 HSBC, 크레디리요네 등 외국 금융기관들은 최근 SK글로벌의 회계분식이 드러나자마자 "한국의 종합상사와는 신용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노골적인 극도의 불신이다. 외환위기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회복한 국가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제 종합상사는 경영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과거 종합상사는 `수출만이 살길`이란 경영 이념은 있었지만 이윤창출이라는 경영의 기본은 없었다. 현 소장은 "㈜대우의 몰락을 보면서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지 못한 종합상사들이 오늘날 위기를 맞고 있다"며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을 통해 무역전문기업으로서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동수 기자 best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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