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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중국 부품·느슨한 법망이 '승강기 사고 대국' 오명 불러

사업자 등록만 하면 승강기 납품 가능한 기형적 구조

국내시장 외국자본 잠식… 저품질 중국산 부품 들여와

정부, 관련법 부활시켜 안전관리·기술혁신 유도해야


"승강기 안전은 제품 품질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값싼 중국산 부품과 느슨한 법망이 결국 세계 승강대국인 우리나라에 승강기 사고 대국이라는 오명을 덧씌우고 있습니다."

23일 서울 여의도 한국엘리베이터협회에서 만난 김기영(55·사진) 한국엘리베이터협회 회장(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사회적 화두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온 국민이 이용하는 승강기 안전에 대해서는 불감증이 널리 퍼져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누적 설치 대수 기준으로는 세계 9위, 연간 신규설치 규모로는 세계 5위에 달하는 '승강기 대국'이지만 안전 관리는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그 중심에는 '승강기 시설안전 관리법'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승강기 산업 발전과 함께 제정된 '승강기 제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었지만 안전행정부가 들어선 2009년 '승강기 시설 안전 관리법'으로 바뀌었다"며 "승강기 제조에 관한 법률이 통째로 사라지며 부품 관리와 제조 관리, 기술 인력, 측정기 보유 여부, 납품 실적 등을 철저하게 관리하던 기존 시스템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사업자등록만 하면 승강기 납품이 가능한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관련 업계에 따르면 승강기(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 부품 고장이나 불량 부품 등으로 인한 사고는 지난 해에만 1만건이 넘었다. 특히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는 막대한 인명 사고로 연결되는 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처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무자격 생산자의 진입을 허용하고 함량 미달의 부품이 유통되도록 방치한 정부 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게 김 회장의 지적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국내 승강기 산업이 잇따라 외국계 자본에 잠식되면서 구조적인 문제가 시작됐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지난 1999년 미국의 오티스엘리베이터가 LG산전의 엘리베이터 사업 부문을 인수하며 오티스엘리베이터의 역사가 시작됐으며 독일에 본사를 둔 티센크루프는 2003년 동양엘리베이터를 인수해 국내에 진출했다. 독일의 쉰들러는 2000년대 초반 중견기업인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한 데 이어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매집에 나서 현재 2대 주주로 올라 있다. 이처럼 대기업 계열 승강기 업체들이 대거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우리나라 승강기 산업의 80%가 외국 기업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점유율은 약 20% 수준.

더 큰 문제는 외국계 업체들이 중국에서 저급 부품을 들여오면서 승강기의 품질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품질 관리가 엄격한 미국이나 유럽으로 나가는 부품은 고가 라인으로,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부품은 저가를 사용하면서 국내 승강기 산업의 안전 자체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제조에서 밀려난 중소기업들이 부품 수입과 유지관리업체 등으로 전락하면서 국내 승강기 유지관리 업체는 20년 전에 비해 3배나 증가한 900여개에 이르게 됐다. 한정된 시장을 두고 유지관리업체들이 저가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법이 규정한 표준유지관리비보다 낮은 비용이 투입되고, 결과적으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김 회장은 최근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승강기연합회 설립에도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승강기시설 안전관리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면 유지관리업체 5곳만으로도 연합회 구성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미 각 업계를 대변하는 협회가 5개나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합회까지 출범하게 되면 승강기 산업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된다"면서 "무엇보다도 유지 관리만 하면 승강기 안전이 담보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부분인 승강기 제조 과정에 대한 관리 강화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승강기 안전은 제작, 설치, 유지보수 업체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게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면서 "이제라도 '승강기 제조 및 관리에 대한 법률'이 다시 부활해 승강기 산업의 안전 관리와 기술 혁신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정부와 국회가 힘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회장은 스물 아홉살의 나이에 LG오티스에서 연구개발(R&D) 담당 이사까지 오르며 국내 엘리베이터 산업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지난 1994년 송산특수엘리베이터를 설립해 방폭형 엘리베이터·경사형 엘리베이터 등 특수 엘리베이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올해 매출 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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