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한 번 신어봐요, 신어보면 안다니까."
흔한 영업멘트지만 50년 가까이 수제화를 만들어온 구두 장인들의 말투에선 자신감이 느껴졌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서울시 구두명장 1호' 박홍식 씨는 "우리나라 수제화 기술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며 "이태리를 능가하는 기술로 만든 성수동 수제화는 신어봐야 가치를 알 수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11일 500여개 구두 제조업체가 운집한 성수동 수제화거리에는 활기찬 기운이 감돌았다. '중국산 저가공세', '명인들의 고령화', '소비심리 위축' 등 온통 악재투성이지만 성수동 거리를 '수제화 메카'로 일으키겠다는 소공인들의 뜨거운 의지는 곳곳에서 느껴졌다.
구두테마역으로 조성된 '슈스팟 성수(Shoespot Seongsu)'답게 성수역에 발을 딛자마자 곳곳엔 구두를 테마로 한 디자인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성수역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교각 주변 공간을 활용해 만든 구두 공동판매장 '프롬SS'이 거리를 찾은 이들을 반겼다. 부모님 선물을 위해 성수동을 찾은 정지숙(38) 씨는 "지난번에 선물해드렸던 신발이 발이 편하고 마음에 든다셔서 다시 찾게 됐다"며 "수제화거리가 변화하는 모습이 느껴져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성수동이 '수제화의 메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물류의 중심지였던 서울역 염천교 부근 구두가게들이 성수동으로 옮겨오면서부터다. 성수동은 명동 일대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유명 구두브랜드 본사와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 등으로 가죽공장을 비롯한 구두관련 업체들이 모이면서 수제화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한때 1,000곳에 달했던 구두제조업체들은 현재 절반 가량 남았다. 밀려드는 주문으로 바삐 움직이던 성수동이 점차 활력을 잃어왔던 것. 김한수 서울성동제화협회 사무국장은 "20년 전만 해도 일대에 수많은 업체들이 있었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구두업계가 침체에 빠지면서 500여개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한평생 손수 구두를 제작한 명인들이 모인 성수동은 국내 구두생산의 절반을 담당한다. 그러나 대기업의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곳 소규모 업체들은 국내 유수의 구두 브랜드들이 워크아웃 등 어려움에 빠지면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왔다. 25년간 A사를 운영해온 B씨는 "명절을 앞두고 구두상품권을 선물하던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국내 업체들이 중국에 생산을 맡기면서 매일 적자"라고 호소했다.
사정이 이렇자 수제화 장인들은 힘을 합쳐 돌파구를 열고 있다. 지난 2009년 성수동 안에 있는 구두제조공장들이 함께 서울성동제화협회를 만들고, 자체브랜드 'SSST'(서울성수수제화타운)을 만들어 공동 판매장을 열었다. 박동희 성동제화협회 회장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앞에 문을 연 SSST에는 25개 업체가 영업 중"이라며 "유통마진을 없앤 덕에 국내 유명 브랜드와 같은 품질의 구두를 절반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운영되는 주말마켓 '슈슈마켓' 역시 소비자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고급 수제화를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점이 적중한 덕이다. 또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는 성수동 수제화 브랜드 '구두와 장인'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부산 서면점에서 열린 행사에선 기성 브랜드를 제치고 놀라운 판매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박 회장은 지금이 성수동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들이 수십 년간 해온 일을 스스로 장인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노동으로 치부한다면 재기할 기회가 없다"며 "공장에 갇혀 있던 분들이 스스로 소비자들과 만나 판매를 시작한 만큼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다면 '구두와 장인'은 세계적은 명품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