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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나라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고,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국가라는 언중유골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규제가 능사인 정부, 기업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국민, 강성 노조, 지대걷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꽃피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에서 보여온 우리 기업인들의 왕성한 기업의욕은 불가사의라고 불러 마땅하다. 그렇게 기를 쓰고 기업을 키우고 지켜왔던 기업인들, 특히 제조업의 현장을 지켜왔던 기업인들의 사기가 최근 두드러지게 떨어지고 있다. 기업, 특히 제조업은 하기 싫고,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하기 싫다는 것이다. 선택권을 준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반 이상이 본사를 외국으로 옮길 것이라는 말이 실감 있게 들린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모두가 내세운 국가비전 중의 하나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다. 우리나라의 기업과 기업인들이 아무런 불편없이 자신들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기업활동을 할 수 있고 외국의 기업들도 투자하고 싶고 기업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기업 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식어가고 있다. 내수시장은 탐이 나지만 불안한 안보상황과 불확실한 정부정책이 부담스럽고, 무엇보다도 강성노조를 다룰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긴박한 남북대치의 와중에서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문턱으로 진입한 나라며, 21세기 IT혁명을 주도할 벤처기업의 출현이 미국 다음으로 왕성한, 국민 들의 도전의식과 성취욕이 특별히 강한 나라다. 반면 정부의 권한과 국민들의 평등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고, 사회지도층의 리더십과 책무의식이 미흡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소위 IMF처방에 따라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였으나 구조조정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문제점을 돈으로 덮어 해결한 결과 경제의 기반이 불안해지고 약해졌다. 21세기를 이끌어 갈 국가경제의 새로운 시스템을 미처 구축하지 못한 채 계층간 갈등, 세대간 갈등, 이념의 갈등에 휩싸여 귀중한 시간과 국가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정치적∙이념적 시각이 빚어낸 편 가르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이 사장되고 있고 노사, 기업기반, 교육, 과학기술 등 국가의 장기적인 생존과 발전에 필수적인 전략과 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소수당의 열세를 총선을 통하여 만회해야 한다는 집권층의 강박관념이 정부의 정책을 경제기반의 강화보다는 인기주의적 성향으로 이끌고 있고, 어설픈 전문가들이 불완전한 정책제안을 양산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기업을 창업하기 쉽고 그만 두기도 쉬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각 산업 분야의 진입장벽이 낮아져야 한다. 과잉투자나 과당경쟁의 우려는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은 분명히 퇴출 된다는 원칙이 지켜진다면 해소될 수 있다. 부실기업의 신속퇴출제도와 구조조정촉진제도, 인수 합병시장의 활성화 등의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둘째,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에 분명한 한계가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며 기업활동자유의 원칙과 경쟁의 결과는 전적으로 기업이 책임지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핵심적인 역할은 중앙은행을 통하여 물가(화폐가치)를 안정시키고, 금융감독기구를 통하여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함으로써 신용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며,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하여 시장 경쟁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통신 항만 공항 도로 에너지 등 사회간접자본을 제공하고, 전략적 산업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에 예산을 배정하며, 시장실패의 감시제도와 유연한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것이며, 그 이상의 개입은 금물이다. 셋째, 기업과 기업인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대폭 강화하되 기업과 기업주를 분명히 구분하여 기업이 커지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축복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향할 방향은 국가의 규모는 작아도 기업이 크고 강하여 국가경제를 견인하는 기업강국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현재의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협력적인 노사관계로 만드는 일에 두어야 한다. 노사관계의 개혁이 없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비전은 한갓 공염불에 불과하다. 또한 전국을 경제특구화 하여 기업환경을 단숨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는 결단을 내리지 아니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꿈은 단지 백일몽에 그치고 말 것이다. <김일섭 이화여대 경영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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