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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1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군가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우선 구조선을 보내서 그를 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지 않는 데이터의 바다, 지식의 바다에서는 좀처럼 구조선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특히 정보의 갱신이 빠른 스마트 사회에서는 말입니다. ‘신호와 소음’이라는 책이 얼마 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의사결정을 요하는 수많은 데이터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길어 올려지는데, 그것을 어떻게 선별하고 분석해야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니는 정보가 되느냐 하고 말입니다. 수 많은 자료들의 성격과 가치를 알아보려면 대상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정보 생태계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에밀 브루너라는 교육학자는 그것을 ‘지식의 구조’(Structure of Knowledge)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너도나도 ‘인문학’ 또는 ‘데이터’를 말해 주겠다며 입문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주제들인데, 여러분들이 그 분야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내가 가르쳐 주겠다.’ 이제는 깊고 심오한 지식을 이야기하다 못해 ‘넓고 얕은 생각’을 컴필레이션 음반 식으로 소비하는 국면이 됐습니다. 어차피 공부를 해봐야 기억 못하니, 사람들끼리 적정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토막 식으로 알고 지내자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들여다보면 그런 콘텐츠가 인기를 끌만큼 세상이 얄팍해졌고, 사람들이 어떤 정보와 지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앞이 캄캄해 하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메신저’도 중요합니다. 인문학 진흥, 또는 데이터 분석을 외치는 사람 대부분은 과거 대학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키를 산업계나 ‘멘토’를 자처한 각 분야의 현업 전문가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느낌입니다. 학자들은 그들만의 포럼에서 ‘사기꾼’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며 현실을 한탄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좀처럼 대중들에게 공유되고 있지 않다며 비난의 화살을 날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분야를 진흥시킬 정책조차 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참조해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하루 온종일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편안하게 검색을 해 보거나 책을 읽고 어떤 분야에 대한 감을 잡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든, 데이터든 지식에 대해 대중과 이야기하는 길을 선점한 사람이 계속해서 승기를 잡을 수 밖에 없는 시장 구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는 국어를 배울 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는 선생님의 주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실과 ‘관점’(Perspectives)을 구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인문학이나 데이터 모두 만병통치약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이 곳곳에 깊숙이 스며든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국 지식의 구조는 권력의 구조라고도 합니다. 힘을 가진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또는 자신의 사고 회로에 맞게 디자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면밀히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망망대해 같은 지식의 바다에서 온전히 나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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