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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는 대부분 정권을 잡기 전에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고 시장 개입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하곤 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보인 행태는 정반대이다. 권력의 단맛, 관치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은 금융기관 낙하산 인사는 기본이고 심지어 사기업인 포스코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을 작용하는 악행을 서슴지 않는 구태를 반복해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공약으로 작은 정부를 주장했지만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 숫자는 오히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정부 들어 공기업의 규모 역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 이처럼 비대해진 공공 부문은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와 함께 정부가 특정 목적을 위해 무분별하게 시장에 개입하며 시장기능을 왜곡시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에는 정부가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 만능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정부의 처참한 실패로 끝나곤 했다.
◇비대해진 공공 부문으로 경제활력 위축=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기업의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총 순자산가치는 1,777억달러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으로 집계됐다. 이는 우리 경제의 공공 부문 의존도가 과도한 수준으로 그만큼 민간 부문이 위축돼 경제활력이 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공기업 등 공공 부문 개혁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강력한 반대 여론 때문에 산은금융지주ㆍ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인천공항 지분 매각 등은 다음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부 및 공공 부문의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차 세를 잃어가고 있다. 반대로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나타나듯 정부와 공공 부문의 힘을 키워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만 난무하는 실정이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규모를 무작정 키우다 보면 부처ㆍ조직 간 회의와 협의 등이 불필요하게 늘어나 국민과 멀어지고 비효율성이 커진다"며 "특히 국가 및 지방 공기업의 재정적자가 엄청난 수준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스코와 KT 등 이미 민영화된 공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포스코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는 특성상 정권교체기마다 정치권의 자기 사람 심기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민영화된 KT 역시 정치권의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데다 정권 실세와 경영진이 연루된 '대포폰' 논란 등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시장 위에 군림하려는 정부=시장에 군림하며 시장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오만함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 정부는 특히 물가안정을 목표로 기업을 옥죄는 인위적인 가격통제에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정부는 정유사의 팔을 비틀어 한시적으로 기름값을 내리기도 하고 알뜰주유소를 통해 공급 시장에도 뛰어들었지만 치솟는 기름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 국제 원유시세와 수급 동향에 따라 움직이는 석유제품 가격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줄을 잇는 식품가격 도미노 인상도 정부의 무리한 개입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정부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식품ㆍ주류 기업의 가격인상 시도를 철저히 통제했지만 총선 이후 억눌렸던 물가가 일제히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골목상권을 살린다며 강제한 대형마트 휴일 영업 규제도 소비자의 선택권만 제한할 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한 시장조사 업체를 통해 조사한 결과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시행된 날 전통시장 매출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았고 일부 시장의 매출은 평소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소비자를 보호한다며 기름값 규제에 나섰다 또 영세 공급업자를 위한다며 골목상권 규제를 실시하는 등 뚜렷한 기준과 원칙 없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시장에 개입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는 무리한 시장개입이 가져올 시장왜곡과 부작용을 먼저 감안하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로 개편 필요=전문가들은 정부 비대화와 지나친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의 기능을 규제 위주에서 민간 부문 및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또 유사ㆍ중복 기능 통폐합 등으로 작은 정부를 실현해 국가재정을 안정시키는 작업도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공공 부문의 기능 중 민간이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인 부분은 과감히 민간으로 이양하고 공기업 민영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민간의 사업 기회를 늘리는 동시에 불필요한 시장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정부의 기능 중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에 넘길 수 있는 분야는 과감히 권한을 이양하고 정부는 지식경제와 사회복지ㆍ문화 등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며 "무엇보다 시장을 교란하고 각종 부작용을 양산하는 정부의 국토해양, 사회간접자본(SOC) 업무를 축소하고 빚더미에 앉은 지방자치단체 개발공사 등을 해체하거나 민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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