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 1·4분기 인텔과의 격차를 역대 최소로 좁히면서 반도체 왕좌의 대망을 눈앞에 뒀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점유율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의 격차를 더 벌렸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쌍두마차가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면서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이 더욱 공고해지는 모양새다.
21일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가 집계한 올 1·4분기 매출액 기준 전 세계 종합반도체 시장 점유율 자료를 보면 2위 삼성전자(11.2%, 95억8,900만달러)와 1위 인텔(13.3%, 113억9,100만달러)의 격차는 2.1%포인트로 나타났다. 역대 최소 격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한해 점유율(10.7%)에서 0.5%포인트 상승했다.
4위 SK하이닉스도 지난해(4.5%)보다 점유율을 0.6%포인트 끌어올리며 43억4,7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최상위 5개 반도체 기업 가운데 지난해보다 점유율을 높인 곳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다. 인텔은 14.1에서 0.8%포인트 떨어졌고 퀄컴(5.2%, 44억3,400만달러)도 0.2%포인트 하락했다. 마이크론(4.5%, 38억6,600만달러)은 변동이 없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엘피다를 흡수합병한 마이크론을 몰아내며 종합반도체 4위를 탈환한 바 있다.
한국 기업들의 쾌속질주는 각 업체가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반도체 시장의 전반적 호황이 상승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D램 메모리 분야에서 나란히 1·2위를 달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미세공정 기술력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선폭 20㎚(1㎚는 10억분의1m) D램을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업체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도 20나노 초반 D램을 순조롭게 양산하고 있다. 반도체 선폭의 숫자가 작을수록 더 좋은 성능의 칩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삼성전자는 세계 유일의 입체형 낸드플래시(V낸드) 양산에 성공하면서 D램·낸드 시장에서 모두 독보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14나노 핀펫 공정 기술을 확보해 비메모리 영역인 파운드리(수탁생산) 사업에서도 실적 개선세를 나타내고 있다. 스마트폰의 핵심부품으로 고도의 설계기술이 필요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자체 생산 비중도 갤럭시S6를 기점으로 확 끌어올린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낸 삼성 비메모리 사업이 올해 흑자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IHS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의 총규모는 3,545억달러(약 388조원)로 전년 대비 10% 가까이 커졌다. 각종 스마트기기의 홍수와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본격 개막에 힘입어 향후 5년간 반도체 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7%를 넘나들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쾌속질주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삼성과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한국 반도체 업계가 한 단계 도약해 진정한 반도체 강국에 오르기 위해서는 메모리 위주로 짜인 지금의 산업구조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제품 종류도 다양하고 성장세도 급속한 비메모리 분야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IHS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차·무선통신·공장자동화를 비롯한 각종 분야에 활용되는 반도체인 '산업용 반도체' 시장에서 주요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한국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 이 시장은 총 404억달러로 전 세계적으로 전년 대비 18%나 규모가 늘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를 잘하고 있다고 해서 안주할 것이 아니라 IoT 전개에 따라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질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일본 같은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며 "기업들의 노력 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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