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환경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특히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 악화는 불가피하다. 엔저로 인한 대일 수출에 직접적인 악영향보다는 양국 주력수출품의 높은 경합도로 인해 세계 교역시장에서 타격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엔저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내 수출기업들을 지원할 근본적인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내놓은 '엔화 약세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0년대 이후 원·엔 환율은 국내 수출과의 상관계수가 0.43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음(-)에서 양(+)으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0년대 이후에는 원·엔 환율이 상승하면 국내 수출이 늘고, 하락하면 수출이 감소하는 상관관계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주요 품목별 원·엔 환율변동과 수출 증가율 간 상관계수는 철강이 0.57로 가장 높았고 정유(0.51), 산업기계(0.50), 기초산업기계(0.35), 자동차(0.23) 등의 순이었다. 양의 값을 가질수록 원·엔 환율과 상관관계가 높은 만큼 이들 업체의 수출 타격이 크다는 얘기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최근 가팔라진 점이 있지만 추세는 2년 전부터 시작됐다"며 "엔저가 일본 제품가격 인하→수출 증가로 이어지기까지 시차가 있는 만큼 이제부터 여파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엔저라고 모두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엔화 부채가 많거나 일본에서 원재료를 수입하는 기업은 오히려 엔저가 유리하다. 엔저로 인한 외환평가이익을 많이 얻어 빚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포스코·롯데쇼핑·현대제철·가스공사·한국전력이 대표적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본에서 기초부품을 사와 완성품 수출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엔저 효과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엔저를 그대로 방치하면, 특히 수출 중소기업과 대기업 협력업체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엔 환율 하락은 원·달러 하락에 비해 과소평가되고 있다"며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목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업체는 물론 수출 중기와 대기업 협력업체들의 타격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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