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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산 법정관리인 백영배 사장
입력2003-05-13 00:00:00
수정
2003.05.13 00:00:00
신경립 기자
“올 하반기에는 주간사 선정 작업에 돌입해 내년까지는 M&A를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하반기 이래의 경기 침체로 의류업계가 지속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산의 법정관리인 백영배 대표이사가 바라보는 회사의 앞날은 밝다. 지난해 말 부채비율을 전년대비 170%포인트 이상 낮은 244%로 끌어내리고, 시장 여건이 안좋은 올 상황에서도 15% 가량의 매출 증대를 예상하는 백 사장의 뇌리에는 이제 슬슬 회사 정상화를 위한 구상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99년 “패션(fashion)의 `f`자도 아닌 `피`자도 모르는 상태에서”쓰러져 가는 나산호(號)의 키를 잡은지 4년. `캐릭터 캐주얼`이니 `밀리터리 패션`이니 하는 전문 용어들이 대화 속에 술술 흘러 나올 정도로 패션 전문가가 된 백 사장은 수익성과 유동성 위주의 경영을 통해 나산을 빠른 속도로 일으켜 세우고 있다. 2년 연속 이례적으로 법원의 특별 보수를 타 낸 `스타급` 법정관리인. 올해 보수금은 3,000만원은 회사 주식을 매입해 직원들에게 똑같이 나눠주기로 했다는 그는 “내년에도 법원으로부터 경영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적잖이 부담이 된다”면서도 목소리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상투적인 문구이긴 하지만, ㈜나산 역시 `위기는 기회`라는 말에 회사의 앞날을 걸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에 민감한 데다 최근의 신용카드 사용 자제 분위기에서 패션업계가 적잖이 피해를 입은 가운데, 백 사장은 지금이야말로 머지 않아 시장이 살아날 때를 대비하는 `충전기`라고 보고 있다. 올 여름을 저점으로 추동 시즌부터는 패션 업계가 다시 성수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것이 백 사장의 전망. 이를 대비해 경기가 안 좋은 현 단계에서 유통망을 대폭 확충하고, 해외 생산기지 확대와 고객관리 시스템 구축하는 등 공격 경영의 토대를 다진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특히 경기 침체기는 양질의 유통망을 확충할 절호의 기회. 유통 마진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두점 위주로 운영되는 나산에게는 유통망 확충이 성장의 관건. 이에 따라 올 연말까지는 지난해 말 현재 490개에 달한 전국 유통망을 545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이뤄진 제품 구성은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기회를 맞게 된다고 백 사장은 설명한다. 서울 강남 일부 지역에서는 해외 명품등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여야 제품이 팔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지만, “전국으로 봤을 때는 중저가 제품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대리점 중심의 점포 운영을 통해 유통 마진을 줄인 덕에, “현금 유동성이 풍부하고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나산 입장에서는 지금의 내수시장 상태에서 오히려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댜”는 것. “명품 못지 않은 품질의 제품을 실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Good quality best price`정책을 강화”해 매출 증대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공산이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금력을 동원, 올해에는 다른 브랜드 인수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백 사장은 “백화점 위주의 캐릭터 숙녀복이나 캐주얼 등의 사업을 중심으로 인수대상을 물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가 패션업계 최대의 시련기가 되고 있는 만큼, 유동성이 취약한 업체들은 구조조정의 물살에 휘말릴 수 밖에 없기 때문. 백 사장은 나산이 “2,000억원의 외형 규모에 현금 보유가 1,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현금 사정이 좋다”며 “올해가 사업 확대를 위해서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정관리까지 몰릴 정도로 부실화됐던 나산이 이렇듯 자신감을 되찾기 까지는 백 사장의 `기업문화 쇄신`을 거쳐야 했다. 백 사장은 “평등주의에 젖은 기업 문화를 경쟁적이 분위기로 바꾸는데 적잖이 애를 먹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백 사장이 직원들의 패배의식을 타파하기 위해 대표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직원들의 처우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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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나 채권단은 사회에 피해를 입힌 부실 기업인 만큼 직원들이 희생해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적절한 대우 없이는 능력있는 직원들은 모두 회사를 떠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백 사장은 1,250명이던 직원 수를 350명으로 줄인 대신 남은 직원들에 대해선 패션기업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수를 보장하고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 인재 붙잡기에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덕분에 “예전에는 수시로 퇴사와 입사를 반복해 브랜드 전통을 지키기도 힘들었던 디자이너들이 이제는 아무도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는 즐거운 고민을 토로했다.
그 자신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2~3일 간격으로 열리는 디자이너들의 사내 품평회에는 거의 매번 참석해 이들의 시각을 직접 전해듣고, 고객을 접하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벌써 1년여 째 매주 수요일마다 전국의 대리점 순방에 나서고 있다. 찾아 나선 대리점에서 점주와 반드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가 고수하는 철칙. “사장이라고 가서 앉아 있으면 동료 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유. “대리점에서 직접 고객들의 반응과 현장의 모습을 보면 본사의 잘못이 빤히 드러난다”며 “대리점 순방 이후 본사에서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대리점 핑계를 대는 일이 없어진 점도 큰 수확”이라고 그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이제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 성공하고 경영실적도 어느 정도 선순환의 궤도에 올려 놓은 나산에게 이제 최대의 관건은 최상의 인수자를 물색하는 일이다. 백 사장은 “원매자는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단기 차익만을 노리는 자금에게는 관리인으로서 인수 자격을 주지 않을 생각”이라며 “핫 머니를 제외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25년간 한국 패션 산업은 고객들의 관심 덕분에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해 왔다”며 “한국 패션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수 대상을 물색해 나산을 인계하는 것이 나에게 남겨진 소명”이라고 그는 덤덤하게 밝혔다.
■ 경영철학과 스타일
`기업은 통풍이 잘 돼야 한다`
㈜나산의 백영배 대표이사는 현실에 안주하는 `정체`를 거부한다.
쓰러져 가는 나산에 법정관리인으로 부임한 이후 그가 펼쳐 온 도전 경영은 모두 `통풍 경영`을 실현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직의 모습은 상하 동료간에 스스럼 없이 의논하고 아이디어를 제기할 수 있는 `캐주얼하고 통풍이 잘 되는` 조직. 경직되지 않은 캐주얼한 분위기가 바탕이 된다면 실패를 우려해 현실에 머물기 보다는 늘 새로운 시도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 기를 펴고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어야 직장에 신바람이 불고 조직을 젊게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지연이나 학연은 당연히 배제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열심히 일을 해서 회사에 어떤 형태로든 이익을 안겨 준 사람은 당연히 이익의 일부를 돌려 받아야 하고, 회사가 발전하면 구성원의 삶의 질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는 것. 상하를 막론한 `나눔의 경영`은 그가 신봉하는 또 하나의 지침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법원으로부터 받은 특별 보너스를 모두 직원들 몫으로 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캐주얼한 `통풍 경영`은 현장 중시라는 그의 또다른 경영 철학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간부들의 보고만 받느라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정체된 CEO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 개선점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 백 사장은 벌써 1년 이상 매주 한 곳씩 전국의 대리점을 직접 찾아 가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고객들과 직접 대하는 일선의 목소리를 듣는다. 피라미드식 보고로는 잘못된 점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요식 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 뭐든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야 마는 그의 꼼꼼한 경영 스타일도 이 같은 경영철학의 발로인 셈이다.
◇약력
▲45년 서울 출생
▲63년 경기상고 졸업
▲67년 효성그룹 동양나이론 입사
▲68년 연세대 상경대 경영학과 졸업
▲79년 효성물산 대성목재 부사장
▲88년 효성그룹 종합조정실장(부사장)
▲91년 동양나이론 사장
▲96년 효성물산 사장, 부회장
▲99년 나산 대표이사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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