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송전망 확보가 가장 큰 문제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관련해 정부 고위관계자가 내놓은 우려다. 발전소를 짓더라도 생산한 전기를 끌어올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은 과제라는 얘기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 이상의 대립이 예견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11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에서 2차 에기본 공청회를 열고 정부안을 확정 발표했다. 공청회에서는 정부 계획대로 오는 2035년 원전 비중을 29%로 맞추기 위해서 설비용량 기준 4,300만㎾의 원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계획된 원전 건설을 통해 2024년까지 총 3,600만㎾가 확충된다 해도 2025~2035년에 추가로 140만㎾급 원전 5기 이상이 건설돼야 달성 가능한 수치다.
정부는 산업경쟁력 등을 고려, 고심 끝에 29%라는 숫자를 선택했지만 이 숫자가 몰고 올 파장은 만만찮다. 신규 원전 후보지인 삼척과 영덕의 반발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끌어올 '동해안 송전망' 확보가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당장 5~6년 후부터 줄줄이 이어질 노후원전의 재가동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영덕·삼척 원전…백두대간 가로지를 초고압 송전망 필요=현재 건설·계획 중인 11기의 원전 외에 지어질 신규 원전은 강원도 삼척과 영덕에 들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삼척과 영덕 외에 다른 부지를 검토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신규 원전 예정구역으로 고시된 삼척과 영덕에는 중장기적으로 각각 4기 이상씩 원전이 지어질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이들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올 송전망을 전부 새로 깔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삼척 원전의 경우 수도권 송전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망 건설이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된다. 원전이 4기(140만㎾×4) 이상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밀양 송전탑과 같이 주민 반발이 극심한 초고압(765㎸) 송전망이 필요하다. 이보다 전압이 낮은 345㎸의 경우 송전 가능용량이 430만㎾에 그치기 때문이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은 "삼척 원전이 지어지면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망이 또 건설돼야 하는데 강원도 내에서 환경 논란은 물론이거니와 제2의 밀양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35년까지 수명 종료 원전만 14기, 모두 재가동은 힘들어=2차 에기본에 따라 추가로 건설될 것으로 예상되는 신규 원전 5~6기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 모두 살아 있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원전의 설계수명은 보통 30년인데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들의 수명 연장(10년)을 위해서는 모두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계속운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2020년께부터 설계수명이 다하는 원전들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2035년까지 설계수명이 다하는 원전은 총 14기에 달해 현재 국내 원전(23기)의 60%가 계속운전승인을 받아야 할 운명이다. 당장 월성 1호기가 계속운전승인을 기다리고 있고 고리 2호기(2023년), 고리 3호기(2024년), 고리 4호기(2025년) 등 매년 1~2기꼴로 설계수명이 종료되는 원전들이 나온다. 정부가 이 모든 원전의 설계수명을 다 연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설계수명이 한 차례 연장된 고리 1호기의 경우 잦은 고장을 일으키면서 지역 내의 폐지 여론도 커지고 있다.
◇분산형 발전 확대, 가스 가격 인하 여부가 관건=정부는 이번 2차 에기본에 1차 에기본과는 달리 석탄발전과 가스발전의 비중을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정부는 다만 현재 5% 수준인 도시 및 산업단지 인근 분산형 발전을 15%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소규모의 분산형 발전은 대부분 가스발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2차 에기본은 사실상 가스발전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이에 따라 기업체들의 자가발전을 늘리고 도시 인근에는 소규모의 가스발전소 건설을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원자력이나 석탄에 비해 가스발전 단가가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계획이 산업계의 호응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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