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 존경… 그를 위해 공 던졌어요" [리빙 앤 조이] 2007프로야구 MVP 리오스 인터뷰Q : 김감독이 당신의 이런 마음 알고 있나?A : 아직 말한 적 없어… 신문 보면 알게 될 것 김면중기자 whynot@sed.co.kr ■다니엘 리오스 프로필 ▦ 키 187㎝ 몸무게 90㎏ ▦ 생년월일 72년 11월 11일 ▦ 2002 ~ 2005 기아 타이거즈 ▦ 2004 다승 1위 ▦ 2005 ~ 두산 베어즈 ▦ 2005 탈삼진 1위 ▦ 2007 ~ 프로야구 올스타전 동군 대표 ▦ 2007 MVP, 방어율, 다승, 승률 1위 ▦ 2007 시즌 기록: 평균자책점 2.07, 22승 5패, 탈삼진 147 10년이 지났다. 한국 야구장에서 파란 눈, 검은 피부의 사나이들이 뛰기 시작한 지 말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활약한 외국인선수는 150명이 넘는다. 그러나 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던 용병은 단 두 명 뿐이었다. 지난 98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42개의 홈런을 쏘아올린 타이론 우즈와 이번 시즌의 다니엘 리오스(35) 뿐이다. 사실 외국인선수가 MVP로 뽑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텃세 때문이다. 해마다 MVP 투표를 할 때 후보들의 성적이 고만고만하면 국내 선수를 밀어주는 분위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만약 지난해 류현진(한화), 이대호(롯데), 오승환(삼성)이 벌인 3파전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쟁이었다면 리오스의 수상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수상은 예견된 일이었다. 리오스의 올해 활약이 다른 후보에 비교해 절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방어율, 다승, 승률 3관왕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눈 부실 정도인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내용이 더욱 놀랍다. 선발로 20승 이상을 기록하며 1점대 방어율을 지켜낸 것은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이다. 20승을 넘어선 것도 지난 99년 정민태(현대) 이후 8년 만이다. 선발로만 20승 이상을 기록한 건 지난 95년 이상훈(LG) 이후 무려 12년 만이다. 성적만 좋은 게 아니다. 리오스는 어느 팀이나 탐낼 만한 ‘한국형 용병’이다. 그의 솔선수범 하는 태도, 동료들과의 친화력은 그의 개인 성적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다.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리오스를 역대 최고의 외국인선수로 꼽는 것은. 리오스를 만나 지난 6년 동안의 한국 생활과 야구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지하철 타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데요.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서 불편하진 않나요. ▦ 더울 때 짜증나는 거 빼고 특별히 불편한 건 없어요. -그렇게 여행을 좋아한다면서요? ▦ 한국 온 첫 해에 많이 다녔어요. 틈만 나면 아내와 여행을 다녔죠. 요즘엔 많이 다니지 못해요. 서울 오고 나서는 더욱 그렇죠. -6년 동안 한국에 살며 다녀본 곳 중 어디가 가장 좋았나요. ▦ 거제도! 꽃과 해변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광주에 살 때 목포도 가봤는데, 거기 해변은 많이 질었어요. 바다는 서해보다는 동해 쪽이 더 마음에 들어요. -그럼 롯데나 삼성으로 가지 그랬어요. ▦ (웃음) 해변이 가까운 부산, 좋아하는 도시에요. 하지만 내가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도시와 가보고 싶은 도시는 다르죠. 해변을 즐기려면 제주에 팀 하나 만들면 어떨까요? (웃음) -'이오수'라는 한국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 한국 문화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한국에 있었겠어요? 난 특히 한국의 건축 문화를 좋아해요. 아기자기한 골목이 많은 홍대 앞, 시원한 마천루가 펼쳐진 서울 강남, 한국 고유의 전통이 묻어있는 인사동을 좋아하죠. -6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으면 한국말도 할 법 한데, 아직은 잘 못하는 거 같네요. ▦ 그 부분에 대해선 늘 안타깝게 생각해요. 하지만 읽을 줄은 알아요. 뜻은 잘 모르지만. -그럼 경기할 때 어떻게 코치, 동료 선수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거죠? ▦ 콩글리시! -그럼 두산에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단 말이에요? 답답하지 않아요? ▦ 누구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동료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단, 랜들은 예외죠. (웃음) 가벼운 이야기를 적당히 했으니 이제 본론에 들어갈 차례다. -지난 2005년 7월7일 대구에서 벌어진 삼성전 6회말에 조동찬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교체될 때, 덕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포수 김상훈을 포옹했어요. (리오스는 3일 후 두산으로 트레이드 됐다.) 그때 퇴출 당할 것을 이미 알고 그런 건가요? ▦ 예, 알고 있었어요. 구단에서 미리 말해줬죠. 난 마지막 등판을 했고, 그걸로 끝이었죠. 그리고 그때 내 앞에 김상훈이 있었죠. -기아에서 두산으로 팀을 옮겼던 지난 2005년 기록을 보면 참 신기해요. 같은 해인데 기아에 있을 때랑 두산에 간 후 성적이 전혀 딴판이거든요. ▦ 스포츠는 어떤 객관적인 정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 변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곤 하죠. 두산 팀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그게 작용한 결과인 것 같아요. -다른 변수는 없었나요. ▦ 팀의 타격 실력도 투수에겐 무시 못할 변수죠. 타자들이 잘하면 아무래도 더 마음 편하게 던질 수 있거든요. -시즌 초 많은 전문가들은 두산을 꼴찌 후보로 예상했는데 2위로 시즌을 마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우리 팀 전력은 전과 같았어요. 아니, 더 나아졌어요. 박명환이 떠났지만, 지난해보다 더 좋은 투수진을 갖췄죠. 이승학이 왔고, 다른 투수들의 실력이 부쩍 늘었거든요. 임태훈이 대표적인 예죠. 무엇보다 김동주가 돌아왔죠. 지난해엔 부상 때문에 거의 뛰지 못했거든요. 이렇게 전력이 탄탄한데 왜 우리를 꼴찌 후보로 찍었을까요?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활약한 150여명의 외국인선수 중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6년 동안 작은 부침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시간이 지나며 나아지고 있어요. 비결이 뭐죠? ▦ 예전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는 건 아니에요.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에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지는 데 집중하진 않아요. 나이 들면서 유리한 점이 뭔지 아세요? 더 똑똑해진다는 거죠. 다양한 구질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게 돼요. -솔직히 다른 종목이었다면 당신은 은퇴할 나이인데, 올 시즌의 성공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 야구는 참 재미있는 스포츠에요. 야구 할 때는 끊임없이 '최적(the best tuning)'을 추구해야 해요. 축구나 농구 선수는 서른이 넘으면 아무래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게 힘들어지죠. 마음으로는 더 빨리, 더 높이 뛰고 싶어도 몸이 따라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야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요. 야구도 서른 넘으면 노장인 건 맞지만 그때부터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생기죠. 특히 투수는 아주 미세한 공의 움직임 차이로 구질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을 수 있어요. 완전히 새로운 구질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커브볼 하나를 던지더라도 그 변종을 수십 가지로 나눠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난 지금도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깨달아요. 타성에 젖지 않는다면 끝없이 발전할 수 있는 종목이 야구죠. -30대 중반인데 구속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비결이 뭐죠? ▦ 그 점에서 난 행운아예요. 여전히 꽤 빠른 공을 던지고 있지만 당장 내년엔 구속이 뚝 떨어질 수도 있어요. 세월은 누구도 어쩔 수가 없어요. 굳이 비결을 들자면 정신력이라고 생각해요. '리오스는 이제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걸 입증해주고 싶었어요. 실력으로 말이죠. 국내 프로야구에서 외국인선수가 장수하기란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당장 짐을 싸야 한다. 성적이 좋더라도 감독과 코드가 맞지 않으면 방출되기도 한다. 이런 한국 프로야구 판에서 그는 꽤 장수한 선수다. 6년이나 버텼으니까. 그런 그가 바라보는 한국 야구판이 궁금해졌다. -한국은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잖아요. 그런 분위기가 불편하진 않았나요. ▦ 그게 꼭 나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여기는 한국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너무 심하면 안 돼요. 너무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는 선수가 제 기량을 펴기 힘들거든요. 이런 문화가 쉽게 변하진 않을 거에요. 잘 변하지 않는 점은 미국 야구계도 마찬가지에요.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감독 및 코치들은 다 나이가 많거든요. 그들은 변화를 원치 않죠.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 문제에 대해선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이런 점에 있어 두산을 좋아해요. 두산에는 각기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코치들도 선수 개개인의 다른 점들을 파악하고 지도해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야구와 미국 야구가 비슷하다는 점, 재미있네요. 그래도 분명 다른 점이 있을 텐데요. ▦ 미국 야구계는 조금 더 '개인적(individual)'이죠. 반면, 한국은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전체 분위기를 중시하고요. 그런데 그건 그저 문화 차이일 뿐이에요. 만약 한국 선수가 미국으로 간다면 그들도 그런 차이가 낯설 거에요. -어떤 문화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 뭐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저 다른 것일 뿐이죠. -아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시스템이 뭐냐고요. ▦ 당연히 내가 어렸을 적부터 쭉 경험해온 시스템이 나한테는 더 잘 맞죠. -외국인선수는 그야말로 '비정규직'인 것 같아요. 성적이 조금만 나빠져도 하루 아침에 해고당하잖아요. 성적이 좋더라도 감독과 코드가 맞지 않으면 당장 짐 싸고 돌아가야 하고요. 이런 현실에 불만 없나요. ▦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에서 뛰고 싶어해요. 돈을 더 많이 주기 때문이죠. 몸값이 높은 만큼 보이지 않는 압력과 기대치는 더욱 커지죠. 이건 외국인선수라는 직업인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에요. 성적이 좋지 않아 나가라고 하면 받아들여야 해요. 그만큼 많은 돈을 받았으니까요. 어떤 한국인 코치가 그러더군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팀 동료들이랑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는 점도 중요하다고요. 당연한 거에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팀 동료인 키퍼가 그러더군요.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것이다. 성적 나쁘면 바로 짐 싸고 돌아가야 한다. 성적이 좋으면? 그래도 짐 싸고 돌아가야 한다.' 그 말 듣고 어리둥절해 키퍼에게 되물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니 키퍼가 그러더군요. '너 참 잘 던진다. 하지만 우린 타자가 필요하다'는 말 한마디에 짐 싸야 한다고. 그 말 듣고 난 후, 어차피 언젠간 떠나야 할 운명이라면 내 방식을 고집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고집을 한국 감독들이 좋아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 이건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죠. -김경문 감독이랑은 잘 맞나요? ▦ 김 감독은 선수들 개개인을 대할 때 다 다르게 대해요. 그런 점이 좋아요. 난 그를 정말 사랑해요. 난 마운드에서 그를 위해 공을 던져요. 내가 감독을 위해 공을 던진 건 아주 오래 전 일이에요. 선수가 감독을 좋아하고 존경하면 그를 위해 공을 던지게 되죠.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을 존경하게 되죠. 감독님이 내게 뭘 시키더라도 다 해낼 겁니다. -감독에 대한 애정이 정말 대단하네요. 김 감독이 이런 마음을 알고 있나요? ▦ 모를 걸요? 한번도 말한 적 없으니까요. 신문에 이번 인터뷰 내용 나오면 알게 되겠죠. 이쯤에서 민감한 질문도 던져보기로 했다. -일본 팀들이 당신에게 눈독들이고 있는 거 알죠?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 언론에서 도는 말이지, 직접 제의 받은 적은 없어요. 그리고 아직 두산이랑 재계약 협상도 하지 않았고요. 난 두산이 좋아요. -일본 팀에서 거절하기 힘든 거액을 제시한다면요? 돈 앞에 장사 없다고 하잖아요. ▦ 아직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은 상황이에요. 지금으로선 뭐라 말할 수 없겠네요. -마지막으로 국내 타자 중 누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자인지 궁금하네요. ▦ 특별히 그런 상대는 없어요. -에이, 그래도 한 명쯤은 있잖아요. 한참 뜸을 들인 후 그는 말했다. ▦ 동주 킴! 입력시간 : 2007/10/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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