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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부터 동부저축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팝업창이 뜬다. 팝업창은 예금금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다. 특이한 것은 1년제 금리가 아니라 '15개월 금리 2.9%, 18개월 금리 3.0%'가 고시돼 있다는 점이다. 1년짜리 예금 금리가 2.8%임을 감안하면 3개월마다 0.1%포인트씩 금리가 계단식으로 올라가 만기가 긴 상품의 매력이 커졌다.
한 금융사의 고위임원은 이를 두고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나오고 있어) 현 상황에서는 장기로 자금을 많이 확보해두면 하반기 금리를 올려 공격적 여신정책을 펴기에 좋다"며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기 전에 장기로 자금을 유치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에 따른 변화는 수신뿐만 아니라 대출 사이드에서도 나타난다.
주택금융공사는 상반기 내에 기존보다 만기를 절반 이상 줄인 5년짜리 적격대출을 내놓는다. 적격대출이 장기고정금리주택담보대출인 만큼 금리 변동 리스크를 많이 줄인 게 특징이다.
금융사가 금리 인상 국면에 대응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은행은 금리를 낮춘 고정금리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상품의 출시 시기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금리 향방에 대한 예단이 쉽지 않고 변동금리 상품의 경쟁력도 여전해 상품 출시를 놓고 눈치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 예금 등 수신 늘려 하반기 공격적 여신 정책 대비=최근 장기 수신 상품의 변별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가깝다. 지난해만 해도 이런 금리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1년제나 2년제 예금 금리나 오십보백보였다. 장기 예금을 받아도 저금리와 불황으로 대출처가 마땅치 않다 보니 굳이 고금리를 줘 가면서 예금을 유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은행은 2년제 금리가 1년제보다 더 싸거나 같을 정도로 금리 체계가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실제 우리은행의 키위정기예금 금리는 연 2.5%로 1년제와 2년제 금리가 똑같다.
이런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올 초부터 금리 인상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다는 진단이 많아지면서부터. 특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의 금리 인상 시사 발언은 이런 기류에 힘을 실어줬다. 아직 금리 인상 시기에 이견이 분분한 것은 맞지만 다소 이른 시기 금리 인상 가능성에 베팅하고 움직이는 금융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현재 저원가성 예금은 수시로 영업을 하고 있고 조만간 정기예금을 조금 더 공격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라며 "하반기에 금리가 인상될 경우 여신 부문을 공격적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으니까 조달 확대 차원에서 정기예금 등에서 총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사는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덜하다. 보험사의 이율 등 금리 체계가 시장에 후행하는 만큼 기준 금리 인상 이후 영업 전략 변화 등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다만 텔레마케팅 채널 등에서 타격이 심한 일부 보험사는 매달 조정되는 공시이율을 더 높이고 좀체 건드리지 않는 최저보증이율 인상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 경쟁도 불붙어=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아무래도 금융사의 수익성은 이전보다 나아진다. 예대마진폭이 커지고 자산운용수익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및 가계 대출에서 연체율이 올라갈 수 있는 점은 부담이다. 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은 "은행만 해도 자산 규모가 워낙 커 대출 금리가 올라도 연체율 상승을 제어할 여력이 된다"며 "하지만 고객의 질이 낮은 저축은행의 경우 금리 인상이 곧바로 수익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수익과 자산 볼륨을 늘리려는 시중은행 간 대출 경쟁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대표적이다. 이미 KB국민은행의 5년제 고정금리 혼합형 주담대의 평균 금리는 3.5% 수준까지 내려와 변동금리형 주담대 금리보다 0.2%포인트 싸다.
이 때문에 다른 은행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마저 나오고 있어 더 그렇다. 가만있자니 국민은행에 고객을 빼앗기고 금리를 낮춘 고정금리 혼합형 상품을 출시하자니 금리 인상이 눈에 밟히는 형국이다. 고정금리 상품 비중을 2016년까지 30%, 2017년까지 40%까지 채우라는 정부 규제도 목엣가시처럼 걸려 있다.
주택금융공사도 조만간 금리를 크게 내린 5년 만기 적격대출을 선보일 계획이라 경쟁구도에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상품의 금리 수준은 최저 3% 중후반까지 예상된다. 기존 10년짜리 적격대출의 평균 금리는 4.3~4.4%라 시장 경쟁력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변동금리대출의 경쟁력도 여전하다"며 "일부 은행이 공격적인 금리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2012년 고정금리를 선택했다 낭패를 봤던 경험도 있어 (고정금리 상품을 적극 밀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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