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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戰이후의 대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지 10일이 넘었지만,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파죽지세로 밀고 가는 듯했던 미ㆍ영 연합군이 이라크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있다. 몇주 내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던 기대는 사라지고,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장기전의 두려움이 국제금융시장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전쟁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이다. 전쟁 후에 세계 질서가 크게 변할 것이고, 따라서 국제 환경 변화에 민감한 한국으로선 전후 세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세계 최강 대국인 미국과 이를 견제하는 나라들과의 파워게임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보수세력들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냉전체제의 진정한 종식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차 대전의 유산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이번 전쟁으로 무력화됐다. 전후에 두 기구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고, 이로써 `서방진영`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다. 다음은 경제 전쟁이다. 미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유럽ㆍ일본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려던 유럽은 이번 전쟁을 통해 분열했고, 일본은 장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제는 전쟁 때문에 1ㆍ4분기에 또다시 침체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지만, 2~3년 후에 유럽과 일본이 따라가기 힘든 성장률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전쟁이 국제사회를 갈라놓은 것은 반전이냐, 평화냐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편에 서느냐, 반대 편에 서느냐의 선택이었다. 프랑스도 유엔의 승인 없이 아프리카에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군대를 파견한 적이 있고, 독일은 유럽 전쟁의 진원지였다. 체첸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러시아와 서부 지역의 회교도를 탄압하는 중국이 인권과 평화를 말할 자격은 없다. 이들 국가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고 반전을 주장했던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을 견제하는 나라들은 강대국이며, 국력이 약한 나라가 줄을 잘못 설 경우 경제적으로 위태로워 진다는 점이다. 미국의 오랜 우방국이었던 터키는 미군의 공격 루트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제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브라질은 미국의 뜻을 받아들여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이머징 마켓으로 부상했다. 한국도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의 국제 질서 변화에 대비해 오늘의 선택을 해야 한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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