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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엔 직거래시장 안만드나 못만드나

'윤전기 아베' 공습에 원·엔환율 속수무책

당국 "실익 없다" 불가에 시장선 "엔저대책 세워야"

"換市 개입하자고 시장 만드는 건 어불성설"

"수입업체 엔저효과 제대로 누리려면 필요"



지난 2007년 1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경제운용방향'에서 가파른 원·엔 환율 하락세를 막기 위해 원·엔 직거래시장 재개설이 가능한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환율은 급전직하하는데 직거래시장이 없어 환시 개입을 비롯한 대책을 전혀 쓸 수 없다는 비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2005년 100엔당 95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미국과 일본 간 금리차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가 가속화하며 780원대로 수직하락한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는 1997년 유동성 부족으로 4개월 만에 문을 닫은 직거래시장을 다시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해 4월 정부는 직거래시장 재개설이 무리라는 결론을 내린다. 양국 무역에서 엔화 결제 비중이 낮고 무역적자로 시장에 엔화 공급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2014년 9월.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벌어지며 엔캐리 트레이드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국내 투자에 집중하던 일본 연기금들이 해외 자산 매입도 추진해 엔화가 가파른 약세를 나타내는 실정이다. 원·엔 환율이 950원대까지 하락한 가운데 내년에는 800원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대세다. 내수가 지지부진한 와중에 원·엔 환율 하락으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내년에 엔화가치가 5.4% 추가 하락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27%포인트 깎일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윤전기 아베'발 엔저 공습에 원·엔 직거래 시장을 다시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외환당국의 입장은 바뀌었을까. 원·엔 환율이 900원대라 아직은 엔저에 버틸 여력이 있지만 당국의 기본적인 방침은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만성 무역적자로 엔화가 자꾸 빠져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엔 직거래 시장이 생겨도 엔화 수급이 여의치 않다"며 "직거래 시장을 열 여건이 안 되고 설령 시장을 만들어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규모가 작으면 작은 충격에도 환율시장이 쉽게 흔들려 기업의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도 "우리나라 무역결제 통화 중 엔화 비중이 작고 전 세계적으로도 자국 통화와 달러 간 직거래시장이 아닌 이종통화 직거래시장이 있는 곳도 드물다"고 밝혔다. 그는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더구나 환시 개입을 목적으로 시장을 만드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올해 2·4분기 현재 우리나라의 수출과 수입결제 대금 중 엔화 비중은 각각 3.1%, 5.3%로 미미하다. 우리나라는 올 8월까지 약 139억달러의 대일 무역적자를 기록했으며 △2013년 254억달러 △2012년 256억달러 △2011년 286억달러 △2010년 361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봤다. 또 직거래시장이 생겨도 당국이 엔화 약세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엔화 약세를 저지하려면 당국이 엔화를 매입해야 하는데 딜러들의 대규모 엔화 매도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며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에 따른 세금 부담도 크다.

하지만 직거래시장을 개설해볼 만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2007년에도 그랬고 우리나라는 원·엔 환율이 하락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봐온 게 사실"이라며 "천수답 환율시장을 방치하지 말고 이제는 직거래시장이라는 인프라를 마련해 엔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과 국제무대에서 경합하는 수출기업들도 시장 개설을 주문하고 있다. 엔화 유동성 부족은 기우라는 게 수출기업들의 시각이다. 원·위안화 직거래시장까지 개설하는 마당에 위안화보다 결제 규모가 큰 엔화 시장을 못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엔화 결제가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과 수입을 합쳐 8%에 이른다. 반면 위안화 결제 규모는 1%도 채 안 된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엔화 결제규모가 위안화보다 크기 때문에 유동성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직거래시장이 생긴다면 기업 입장에서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문병기 무역협회 연구원도 "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은 위안화가 장차 국제통화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라며 "엔화는 이미 국제통화이므로 위안화 직거래시장과 함께 엔화 직거래시장을 개설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윤덕룡 위원은 "수입업체는 엔화가 약세임에도 결제통화가 달러로 지정돼 있어 수입가격 인하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며 "직거래시장이 생기면 이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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