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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다시 보기

조선시대에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임금이 광해군이다. 유교적 관점에서 볼 때 형제ㆍ계모 살해 등 인륜을 거슬리는 행동을 하다가 쫒겨난 임금으로 평가되는 반면, 명ㆍ청 교체기 혼란의 국제 정세에서 실리 외교를 펼침으로써 엄청난 위기를 극복한 현명한 임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이러한 광해군을 다시 보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주목되는 부분이 광해군이 현실에 기반을 둔 실리주의적 정책을 구사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그가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임금이었으며, 이러한 것이 그의 실리 외교를 낳았다는 점이다. 광해군은 선조의 장자인 임해군을 제치고 세자로 책봉되었고 그가 정비의 소생이 아니라는 사실인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그가 세자 책봉된 시점과 그 이후의 행보이다. 광해군의 세자 책봉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 선조가 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가기 직전에 이루어 졌다. 이는 조선이 국가 존망의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른바 비상 전시 내각을 구성한 것과 같은 것이다. 세자 책봉 후 광해군은 선조의 피난 행렬과 행보를 달리하며, 전선으로 나아가 전시 총사령관으로 정규군과 의병들을 독려하였다. 바로 이점이 광해군의 실리주의를 낳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다시 광해군을 떠올리는가. 이라크 전쟁ㆍ북핵위기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 정세, 내부 개혁을 통한 새로운 도약 과제 등 우리가 직면한 정세가 그 당시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광해군을 떠올리면서 우리의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냉정한 국제 정세에서의 의사 결정은 철저히 현실적인 실리를 근거로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명분에 집착하기보다 현실에 근거하여 유연하게 대처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변화와 개혁은 기존 이해 관계의 틀을 바꾸는 작업이다. 따라서 기존 이해 관계에서 득을 보고 있는 세력의 반발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러한 반발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할 경우 개혁 정책은 더 큰 후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변화와 개혁의 명분과 대의가 정당하다고 해서 그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은 반발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러한 반발까지 관리할 수 있는 주도 면밀한 실행 계획을 마련하고 실천함으로써 이루어 지는 것이다. 400년 전의 광해군을 다시 보면서 21세기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 우리는 현실에 기반을 둔 개혁만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것과 기존 이해관계의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김용규(동원증권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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