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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의 날 50돌] 땀·노력으로 일군 'TDX 국산화'
입력2005-04-21 14:57:48
수정
2005.04.21 14:57:48
오명 총리·서정욱 전자거래협회장·양승택 총장<BR>81년 예산 240억 스타트…"실패하면 끝장" 혈서각오<BR>86년 3월 역사적 '결실'
한국 IT산업 발전의 원동력을 꼽으라면 전문가들은 주저없이 80년대 중반 ‘전전자교환기(TDX)’의 국산화를 얘기한다.
TDX 국산화를 통해 한국 통신산업은 본격적인 기술자립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등 민간 기업들이 반도체ㆍ이동통신 등 첨단 IT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오명 과학기술부 총리와 서정욱 한국전자거래협회장, 양승택 동명정보대 총장 등 ‘TDX 3인방’이 있었다. TDX개발의 책임자였던 오명 당시 체신부 차관의 진두지휘 아래 양승택 당시 TDX개발단장과 서정욱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 TDX사업단장은 모두가 불가능으로 여겼던 TDX 국산화를 이뤄냈다.
TDX개발계획이 본격화된 것은 오 부총리가 지난 81년 체신부 차관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오 차관은 부임 직후 국산 TDX연구개발비로 전기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24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당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책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기업들은 물론 체신부 직원들조차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만큼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누구도 오 차관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는 전기통신연구소 간부들에게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토록 했다. 연구원들이 훗날 이를 ‘TDX 혈서’로까지 불렀던 것만 봐도 당시의 비장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국산 TDX의 연구개발을 맡은 전기통신연구소 최순달 소장은 오명 차관에게 양승택 당시 한국전자통신 상무를 TDX개발단장으로 스카우트해달라고 요구했다.
최 소장이 양승택씨를 영입한 것은 그의 능력 못지않게 의욕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구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만난 양승택은 최 소장에게 훨씬 조건이 좋은 삼성의 자리를 마다하고 연구소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양승택은 한국 IT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사업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서정욱의 등장은 TDX의 개발은 물론 상용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그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한국통신의 TDX사업단장으로 옮기면서 TDX 기술이 현장에 실용화되는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시험운용중인 장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던 그를 사람들은 ‘독종’으로 부르며 혀를 내둘렀다.
이들 3인방의 개척정신은 불가능을 하나씩 가능으로 바꿔가며 5년여 만인 86년 3월 TDX 국산화 성공이라는 역사적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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